서울여자교육회 (서울)

목차
근대사
단체
1906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여성교육단체.
목차
정의
1906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여성교육단체.
내용

학문과 여공의 정예(精藝)와 부덕(婦德)의 순철(順哲)을 교육하여 현모양처의 자질을 양성, 완비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양규의숙(養閨義塾)을 후원하기 위하여 진학주(秦學胄)·진학신(秦學新)·정교(鄭喬)·이순하(李舜夏)·고희준(高羲駿)·이영규(李瑛奎) 등의 남자들에 의하여 1906년 5월 초 조직되었다.

회원자격은 20세 이상의 품행단정한 부인으로, 회원수는 약 300명이었다. 이 교육회는 양규의숙의 후원사업보다는 범여성운동에 치중하였다. 여성교육의 실행사업을 위하여 교육과·위생과·여공과를 두고 매월 2회씩 정기 통상회(通常會)를 개최하여 여성에 대한 계몽교육을 행하였다.

계몽교육의 주제는 여성교육과 유아교육에 관한 것, 의관제도의 개량, 내외법 폐지, 위생, 부인산업, 내실적인 생활, 공업개발 등이었다. 또, 여성복지사업으로 생명보험과를 두고 공립병원(共立病院)을 설립, 운영하였으며,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용달회사를 설립하였다. 여성기술교육의 보급에도 노력하였다.

그러나 재정상황이 부실하여 운영의 어려움을 겪더니 3,000여 원 부채정리에 따른 분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로 인하여 새로 설립된 여학교인 여자보학원(女子普學院)까지도 운영난에 봉착하였다.

참고문헌

『한국근대여성운동사연구(韓國近代女性運動史硏究)』(박용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황성신문(皇城新聞)』
집필자
박용옥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