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부여(扶餘). 서익은 일개 졸병이었으나, 창을 잘 쓰기로 이름이 높았다. 태종이 널리 무사(武士)를 구하던 조선 개국초에 우연히 발탁되어 태종의 심복이 되었다.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일명 이방간의 난이라고도 함) 때 선봉장으로 활약, 이방원을 끝까지 호종하여 난을 평정한 공으로,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가 되었고, 1401년(태종 1)에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고 마성군(麻城君)에 봉해졌다. 그 뒤 1408년 풍해도조전절제사(豊海道助戰節制使)가 되었고 이어 운검총제(雲劍摠制) 등을 지냈다. 시호는 장양(莊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