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고종 13) 김성원의 9세손 김홍헌(金洪獻)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도중(李度中)의 서문과 권말에 김홍헌의 발문이 있다.
2권 1책. 목활자본. 규장각 도서·고려대학교 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본문의 앞에 성산계류탁열도(星山溪柳濯熱圖)와 탁열도제현명록(濯熱圖諸賢名錄)이 있다. 그리고 권상에 시 227수, 권하에 오언고시 2수, 칠언고시 1수, 사(詞) 1수, 잠(箴) 1편, 부록으로 제현증유시(諸賢贈遺詩) 166수, 국문가사 1편, 정철(鄭澈)의 국문가사인 「성산별곡(星山別曲)」 1편, 기정진(奇正鎭)의 번사(翻辭) 1편, 정철의 서(書) 1편, 연보·행장·묘갈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서하당팔영차하의선생운(棲霞堂八詠次荷衣先生韻)」은 임억령(林億齡)의 시를 차운하여 서하당의 팔경(八景)을 읊은 것이고, 「여송강보섭방초주변환우서하소작(與松江步屧芳草洲邊還于棲霞小酌)」은 정철과 함께 방초 주변을 거닐고 서하당에 돌아와 술을 마시며 지은 것으로 그의 우국충정이 나타나 있다. 「위조보은헌작삼절(爲趙報恩憲作三絶)」은 보은현감인 조헌(趙憲)을 위해 지은 시로 “하루 저녁 눈앞에 쾌활함은 없어도 오히려 천추에 명성이 있으리.”라 하였다.
「시이우관부방백주석(時以郵官赴方伯酒席)」은 당시 그가 제원도찰방으로서 방백의 주석에 참여하여 읊은 것으로 그의 지극한 효심을 알 수 있다. 「애식영정고송(哀息影亭枯松)」은 풍진(風塵)에 초월한 자기의 일생을 고송에 비유하여 읊은 시이다. 「헌작북당시월미명우역작작가(獻酌北堂時月微明雨亦作作歌)」는 국문가사로서 그가 어머니에게 술잔을 올릴 때 마침 달빛이 희미하고 또 비가 내리고 있을 때 지은 것으로, 가사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