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3책. 필사본. 후손 학원(學源)·평원(平源)등이 편집했으며, 간행 연도는 미상이다. 권두에 홍직필(洪直弼)의 서문, 권말에 후손 강호(康鎬)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2에 부(賦) 4편, 시 245수, 권3·4에 소(疏) 8편, 권5에 병자남한일기(丙子南漢日記), 잡저 4편, 서(序) 1편, 기(記) 2편, 설(說) 1편, 권6에 전(箋) 4편, 계(啓) 1편, 잠(箴) 2편, 명(銘) 2편, 송(頌) 1편, 논(論) 2편, 고유문(告由文) 4편, 부록으로 만사·행장·묘갈명이 실려 있다.
시는 저자가 만년에 사직하고 은퇴하여 지내면서 지은 것이 많은데, 문장이 규모가 크고 의미가 깊으며 그의 굳은 절개가 잘 나타나 있다는 평을 들었다. 아버지 돈(燉), 이공(李珙)·배도형(裵道亨) 등의 시에 차운(次韻)한 것이 있다. 「조회곡명욱시(曹悔谷明勗詩)」와 같은 시에는 명(明)에 대한 절의와 청(淸)과 화의 후의 충분(忠憤)이 잘 나타나 있다.
소(疏)에는 병자호란 중에 남한산성에서 왕을 호가(扈駕)할 때 화의에 반대하고 전쟁을 계속할 것을 주장하면서 승려 육허(六墟)를 장수로 천거한 내용의 「남한호가시소(南漢扈駕時疏)」가 있다.
또한, 1649년(인조 27)에 왕의 학문으로 『춘추(春秋)』를 강조하고, 시폐(時弊)를 혁파하고 의리를 분명히 할 것을 주장하면서 김자점(金自點)의 죄를 성토한 「기축봉사(己丑封事)」 및 그것의 재소(再疏)·삼소(三疏)가 있다.
「병자남한일기」는 1636년 12월 11일부터 1637년 2월 1일까지 당시 조정의 논의와 자신의 견문, 전쟁 과정 등을 기록한 일기이다.
설(說)의 「붕자미정설(朋字未正說)」은 ‘朋(붕)’자의 어원을 음양의 원리로 설명하면서 자신의 붕당관을 밝힌 것이다. 논(論)의 「순경양웅숙우론(荀卿揚雄孰優論)」은 정통 성리학자의 입장에서 순자와 양웅을 사문(斯文)과 군신지도(君臣之道)의 죄인이라고 주장한 글이다.
이 책은 인조 연간의 정치 세력간의 관계 및 주화론자(主和論者)와 척화론자(斥和論者)의 대립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