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인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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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판 인쇄의 방법으로 찍어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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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판 인쇄의 방법으로 찍어낸 책.
내용

석판은 평판인쇄(平版印刷)의 초기 형태로, 처음에는 독일 바이에른 석회석을 이용하여 수용성 부분을 생기게 하고 그 부분에 유성잉크를 칠하여 종이에 인쇄할 수 있는 원리를 응용한 것인데, 독일인 제네펠더(Senefelder,A.)가 발명한 것이다.

당시에는 악보·지도·잡의·만평 등에 많이 쓰였으며, 19세기에는 책 장식과 다양한 종류의 삽화에 이용되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석회석 대신 아연판·알루미늄판·플라스틱판으로 대체되었고, 사진기술 발달로 사진석판술과 오프셋석판술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석판술이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은 19세기 말의 개화기였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박문국(博文局)에 의해 근대 활판인쇄시설이 도입된 1883년보다 상당히 늦은 1899년 농상공부(農商工部) 인쇄국이 설립될 무렵이었다.

이렇게 도입된 석판시설은 정부당국에 의해 우표·지폐·인지·증서 등의 인쇄에 사용되었고, 1908년 광덕서관(廣德書館)에서 최초로 ≪대가법첩 大家法帖≫을 인쇄한 이후 서적간행에는 별로 사용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석판인쇄의 경우 복잡한 것을 정교하게 찍어내는 데 더 적합하고, 일반 서적과 같이 대량 소요되는 것은 오히려 활판인쇄가 더욱 편리하였기 때문이다.

1910년 이전까지는 앞에 언급한 이유 때문에 미미하였으나 1920년대를 넘기면서 다수의 책자 간행에 활기를 띠어 점차 지방으로 보급되었다. 1925년 무렵부터는 100여 종에 달하는 책자가 석인되었고,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기 시작하던 1930년대에는 만주를 시장으로 번성기를 맞기도 하였다.

그러나 1940년대를 넘기면서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로 모든 것이 전시체제로 전환된 속에서 인쇄업도 가장 핍박을 받아 곤궁한 시기에 처한 채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에는 문집과 족보 간행을 하면서 일부 출판사를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이러한 과정으로 발전되어 온 석판인쇄술이 지니는 문화사적 의의로는 첫째, 조선시대 말기의 고루한 쇄국주의를 벗어나 민중의 사고방식을 개화하는 데 선구적 구실을 하였고, 둘째 서적의 대량인쇄 공급체제의 마련으로 신문화 보급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셋째 이전의 인쇄술과 대치하여 좀더 개량된 방법으로 책을 염가로 대량 발간함으로써 일반 대중의 교육 및 일용지식 개발에 이바지하였으며, 넷째 민족의 문화적 유산을 전승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인쇄대감』(한국인쇄대감편찬위원회, 대한인쇄공업협동조합출판부, 1970)
『한국서지학』(천혜봉, 민음사, 1997)
「한국석판인쇄술에 관한 연구」(오영란,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6)
『古書のはなし-書誌學入門-』(長澤規矩也·坂本起一, 1979)
『漢籍版本入門』(陳國慶 著, 澤谷昭次 譯, 東京 硏文出版,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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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강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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