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화원(花園). 자는 자성(子成), 호는 남천(南川).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약관 20세에 서기(書記)로서 최명길(崔鳴吉)을 좇았다. 일찍이 신유(申濡)에게서 수학하였는데, 신유가 언사(言事)에 연루되어 서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그러자, 관직을 버리고 그를 따라갔다가 뒤에 유배에서 풀려 서울로 오게 되자 함께 돌아왔다. 사람됨이 세속을 멀리하고 다만 시와 술을 즐기었는데, 시가 아름답다는 명성이 있었다. 몇 편의 시가 『해동유주(海東遺珠)』·『소대풍요(昭代風謠)』 등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