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왕지기삼사 설화」는 신라 선덕여왕의 지혜와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보여 주는 설화이다. 이 설화는 『삼국유사』 권1 「기이편(紀異篇)」에 실려 있는 것으로, 선덕여왕이 세 가지 일의 기미를 알아차려 앞으로 일어날 일이나 현상의 이면에 숨은 뜻을 파악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선덕여왕의 지혜와 슬기,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긍정적으로 강조하여 그의 임금 될 자질을 칭송하는 맥락에서 서술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선덕여왕지기삼사 설화(善德王知幾三事說話)」는 『삼국유사』 권1 「기이편(紀異篇)」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다. 같은 이야기가 『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 해동잡록(海東雜錄)』 등에도 실려 있는데, 이들 이야기의 출처는 모두 「수이전(殊異傳)」으로 기록되어 있어 흔히 「수이전」 일문(逸文)으로 분류된다.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세 가지 일의 기미를 알아차려 앞으로 일어날 일이나 현상의 이면에 숨은 뜻을 파악했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이담(神異譚)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선덕여왕의 지혜와 슬기,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긍정적으로 강조하여 그의 임금될 자질을 칭송하는 맥락에서 서술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선덕여왕이 비범한 지혜로 알아차린 일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당나라 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 세 가지 빛깔의 모란꽃 그림과 그 꽃씨 석 되를 함께 보내왔는데, 선덕여왕은 이 꽃 그림을 보고 꽃씨에서 피어날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을 예견하였고 다음 해 피어난 꽃에서는 실제로 향기가 나지 않았다. 선덕여왕은 당나라 태종이 이와 같은 그림과 꽃씨를 보낸 것이 곧 ‘짝없이 홀로 지내는 여자’인 자신을 조롱하려는 의도에서 행한 일이라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둘째,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겨울인데도 3-4일 동안 많은 개구리가 운다는 소식을 듣고 선덕여왕이 군사를 여근곡(女根谷)에 보내 숨어 있던 백제 군사를 무찌르게 했다. 선덕여왕은 우는 개구리가 군사를 뜻하고, 옥문이 여성의 생식기를 가리키며, 여성 생식기의 흰 빛이 서쪽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려 적군이 서쪽에 숨어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셋째, 선덕여왕은 자신이 아프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은 때에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고 자신을 장사 지낼 곳으로 도리천(忉利天)을 지목하였다.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딘지 물으니 낭산(狼山) 남쪽이라고 답했는데, 실제 왕의 사후 10년 뒤에 문무왕이 왕의 무덤 아래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어 그를 장사 지낸 곳이 도리천이 되었다. 불경에 사천왕 하늘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왕은 결국 자신이 예언한 날에 죽었는데 스스로 죽을 날을 알고 후에 사천왕사가 세워질 것도 예견한 것이니 신령스러운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연(一然)은 이야기 말미에 삼색 모란이 신라의 선덕 · 진덕 · 진성의 세 여왕을 상징하는 것이라 말하면서 당제(唐帝)가 미래의 일을 예견한 것이라 기술하였다. 또한 선덕여왕이 첨성대(瞻星臺)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덧붙여, 선덕여왕과 당나라 왕의 예지 능력을 함께 칭송하고 선덕여왕의 업적을 치켜세웠다.
선덕여왕이 세 가지 일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남달리 비범한 지혜와 식견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알아차린 첫 번째, 두 번째 일들은 추론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인 반면 자신이 죽을 날과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견한 세 번째 일은 비범한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신이성(神異性)을 드러낸다. 「선덕왕지기삼사 설화」의 이야기가 ‘자못 신이한 일들을 기록해 놓은 이야기책’이라는 뜻을 지닌 「수이전」에 수록된 까닭도 여기 있을 것이다.
선덕여왕의 지기 능력은 파편적인 몇 가지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추론하여 현상의 이면에 담긴 뜻을 파악해 내거나 여러 가지 단편적인 사항들의 상징적 의미를 꿰뚫어 이를 현실에 적용함으로써 단순히 비범한 지적 능력을 보여준 것을 넘어, 뛰어난 문제 해결 및 위기 대처 역량을 보여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선덕왕지기삼사 설화」가 선덕여왕 사후 연달아 여왕이 왕위를 이어야 했던 상황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하거나, 태종(太宗) 무열왕(武烈王)이 삼국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했던 선덕여왕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