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우리나라를 도운 명나라 병부상서(兵部尙書) 형개(邢玠)와 경리조선군무도찰원우첨도어사(經理朝鮮軍務都察院右僉都御史) 양호(楊鎬)를 제향하는 사당이다.
1598년(선조 31) 창건하여 처음에는 형개의 위패만을 봉안하였다가 1604년(선조 37년) 양호를 추배하였으며, 1760년(영조 36) 선무사 마당에 별도의 전각을 마련하여 전에 민충단(愍忠壇)에 있던 임진왜란 때 명나라 전몰장병의 위판을 이안(移安), 함께 제향하였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 두번째 정일(丁日)에 제사를 지냈다.
창건 당시 선조 어필의 ‘再造藩邦(재조번방)’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1746년(영조22년) 어필로 ‘垂恩海東(수은해동)’이라는 현판을 써 걸게 하였다. 1908년(융희2년) 칙령으로 제사를 폐하였으며, 건물은 일제시대 모두 철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