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사적기(禪雲寺事跡記)』는 3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책은 『참당사사적기(懺堂寺事蹟記)』, 제2책은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兜率山禪雲寺創修勝蹟記)』, 제3책은 『선운사지(禪雲寺誌)』이다. 제1책은 77 × 57㎝ 크기에 21장이고, 제2책은 70 × 47㎝에 표지를 포함하여 29장이며, 제3책은 70 × 47㎝에 표지 포함 31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책 『참당사사적기(懺堂寺事蹟記)』에는 1794년(정조 18) 임상우(林相雨)가 쓴 「도솔산대참사고사(兜率山大懺寺故事)」와 「대참사법당기(大懺事法堂記)」, 1713년(숙종 39) 능허후인(凌虛後人) 호월자(浩月子)가 쓴 「대참사사적기(大懺寺事蹟記)」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대참사(大懺寺)는 신라 시대 의운(義雲) 화상이 창건한 절이다. 책에는 1346년(충목왕 2)에 시작해 1398년(태조 7)까지 43차에 걸쳐 이어진 생회(栍會: 점찰법회(占察法會)의 일종)에 참석한 대중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도솔산에는 24개의 굴과 89개의 암자가 있었으며, 선운사(禪雲寺), 중애사(重愛寺), 도솔사(兜率寺)는 모두 신라 진흥왕이 피신했을 때 창건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 선운사에 대해서는 진흥왕이 꿈에서 미륵불의 현신을 만나 절의 기초를 다졌으며, 그 이후 의운 화상이 불상, 불경, 아주(牙籌), 보인(寶印) 등을 얻어 봉안하면서 사찰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2책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兜率山禪雲寺創修勝蹟記)』는 1707년(숙종 33)에 능허후인이 썼다. 이 책은 선운사의 불보(佛寶), 불기(佛器), 전각(殿閣), 요사(寮舍), 탑(塔), 종(鐘) 및 여러 암자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또한 진흥왕과 의운대사에 의해 창건된 후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번의 전쟁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한 선운사의 역사가 나온다. 선운사는 조선 성종 대에 행호(幸浩) 선사가 다시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병화로 무너졌으며, 이후 무장 현감 송석조(宋碩祚)가 발원하고 일관(一寬) 선사가 주도하여 1707년(숙종 33)에 재건되었다.
제3책 『선운사지(禪雲寺誌)』에는 1686년(숙종 12)의 기록과 더불어 1746년(영조 22)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 불화, 경전, 기타 불구(佛具) 등의 물목(物目)이 나온다. 이는 18세기 초 · 중반 선운사의 규모와 불교 유산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책에는 선운사가 ‘당 태종 정관 연간에 처음 창건[唐太宗貞觀年間始創]’되었다고 적혀 있으므로, 선운사가 정관 연간인 627~649년에 창건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선운사사적기』는 선운사의 창건 이후의 역사뿐만 아니라 조선 중 · 후기 선운사의 전각, 불상, 불화 등의 상황을 전한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시대 불교 사회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책은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1997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