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태순(太純). 좌찬성 성억(成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윤 성득식(成得識)이고, 아버지는 현령 성충달(成忠達)이며,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조원수(趙元壽)의 딸이다.
1492년(성종 23)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을 거쳐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형조정랑·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1497년(연산군 3)에 홍문관교리가 되었고 그 뒤 홍문관의 응교(應敎)·전한(典翰), 동부승지·대사간·우승지·사간·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이 때 연산군이 형벌을 남발하여 무고하게 해치자 간관으로서 이에 대하여 과감하게 직언하였다. 1505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호조참판에 임명되었고, 다음 해에 명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왔다.
중종이 즉위한 뒤에 한성부좌윤·대사헌·형조참판·충청도관찰사·호조참판·형조참판·이조참판·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연산군일기』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성품이 민첩하고 국량(局量)이 넓었으며 조그만 허물도 용납하지 않았다.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사숙(思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