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응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시대 사복시판관, 순천부사, 전라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사복시판관|순천부사|전라병마절도사
관련 사건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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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조선시대 사복시판관, 순천부사, 전라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563년(명종 18) 사복시판관이 되었는데 사노(私奴)를 마적(馬賊)으로 잘못 알고 살해하여 파직당하였다. 그 뒤 복직되어 1587년(선조 20)에 순천부사(順川府使), 1589년에 전라병사를 역임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좌방어사(左防禦使)로 임명되어 경상도로 가던 중 조방장 박종남(朴宗男)과 함께 의흥(義興)에서 왜적을 만나 죽령을 거쳐 의주 행재소(行在所: 正宮을 떠나 임시로 마련한 왕의 처소)로 향하였다.

전란중 방어사 심희수(沈喜壽)의 종사관으로 활약하고 요동(遼東)에 들어가 원병을 요청하는 한편 명나라 장수 접대 등에 공로가 많다 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에 거론되었으나 책록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명종실록(明宗實錄)』
『선조실록(宣祖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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