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때 풍수지리설로써 사대부의 집에 드나들면서 길흉을 말하다가 광해군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왕에게 권하여 인경궁(仁慶宮)과 경덕궁(慶德宮)·자수궁(慈壽宮)을 짓게 함으로써 1616년(광해군 8)에 영조도감(營造都監)을 설치하여 팔도에서 재목을 징발하였으며, 승군(僧軍)을 동원하여 일을 시켰으므로 한때 서울에 승려들이 가득하였다고 한다.
이때 복역한 승려들에게 도첩(度牒)이 주어졌다. 1618년(광해군 10)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어 새로 지은 궁궐 옆에 집을 짓고 살았으며, 승려들의 내왕이 많아서 마치 절과 같았다고 한다. 1623년 인조반정 때 귀양가서 주살(誅殺)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