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黃順元)이 지은 단편소설. 1953년 5월 『신문학(新文學)』지에 발표되었고, 1956년 중앙문화사(中央文化社)에서 간행한 단편집 『학(鶴)』에 재수록되었다.
1959년 영국의 『인카운터(Encounter)』지의 단편 콩쿠르에 유의상 번역으로 입상되어 게재되기도 하였다. 이성에 눈떠가는 사춘기 소년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첫사랑의 경험이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소년은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는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벌써 며칠째 소녀는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소녀는 물 속에서 건져낸 하얀 조약돌을 건너편에 앉아 구경하던 소년을 향하여 “이 바보” 하며 던졌다. 소녀는 갈밭 사잇길로 달아나고 한참 뒤에는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갈꽃 저쪽으로 사라져갔다.
소년은 물기가 걷힌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소년은 주머니 속의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토요일 날 개울가에 나타났다.
소년과 소녀는 들길을 달리며 허수아비를 흔들기도 하고, 비탈의 칡꽃을 따다 다친 소녀의 무릎에 소년은 송진을 발라주기도 한다. 소년은 코뚜레를 꿰지 않은 송아지를 타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수숫단 속에서 비를 긋고, 소년은 소녀를 업어 물이 불은 개울물을 건네주었다. 그 뒤 며칠 만에 소녀는 핼쑥한 얼굴로 개울가에 나타났다. 그 날 소나기를 맞은 탓으로 앓았다는 것이다.
소녀의 분홍 스웨터 앞자락에는 소년의 등에 업혔을 때에 묻은 검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갈림길에서 소녀는 대추를 건네주며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녀가 내일 이사간다는 날 밤, 소년은 잠자리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초시댁두 말이 아니어.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버리구.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가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구…….”
어린 소년과 소녀가 등장하는 황순원의 일련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숙한 세계로 입문하는 통과제의의 과정으로 소녀와의 만남, 소녀의 죽음, 조약돌과 분홍 스웨터로 은유되는 소년과 소녀의 감정의 교류 등이 서술된다.
작품의 절정이자 전환점인 소나기를 만나는 장면으로 두 사람의 교유는 고조되지만 소녀는 병세가 더쳐 죽게 된다. 유년에서 성적 성숙의 징검다리를 건너갈 때면 누구나 겪게 되는 정서적 경험이 서정시적 여운을 남기며 보편적인 정감의 세계로 독자를 연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