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은 해방 이후 「소나기」, 「나무들 비탈에 서다」, 「불가사리」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다. 1915년에 태어나 2000년에 사망했다. 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신문에 발표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1934년 일본에 유학하면서 동인 활동과 소설 작품을 시작하여 1940년 첫 단편집 『늪』을 내면서부터 소설 쓰기에 전념했다. 초기에는 입사소설 형식을 띠는 작품들을 특유의 시적 문체로 많이 썼다. 이후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내몰린 비극적 현실을 증언하는 내용을 주로 썼고, 그 속에서 생명의 기운과 소중함을 설파했다.
1915년 3월 26일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평양 숭덕학교 고등과 교사였던 찬영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만강(晩岡)이고 본관은 제안(齊安)이다.
1929년 평양 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정주 오산중학교를 거쳐 1934년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했다. 이 해에 일본에 건너가 도쿄의 와세다 제2고등학원에 진학했으며, 1936년 와세다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1939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향리인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 등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지내다가 1946년 월남하였다. 이후 서울중고등학교 교사, 경희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57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80년 경희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였으며, 2000년 9월 14일 향년 86세로 별세하였다.
황순원의 문학 활동은 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신문에 발표하는 데서 출발한다. 첫 시집 『방가(放歌)』(1934), 제2시집 『골동품(骨董品)』이 그 결실이다. 와세다 제2고등학원에 다닐 무렵에는 이해랑 · 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단체인 학생예술좌(學生藝術座)를 만들기도 했으나 희곡작품을 남기지는 않았다.
1935년 『삼사문학(三四文學)』의 동인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일본에서 발행된 『창작(創作)』의 동인이 되었으며, 1937년에는 『단층(斷層)』의 동인이 되었다.
동인지 활동을 하던 이 무렵부터 소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 단편 「거리의 부사」를 『창작』제3집에 싣는 등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40년 첫 단편집 『늪』(1940)을 내면서부터 소설에 전념하게 된다. 황순원은 주로 단편을 창작하다가 「움직이는 성」(1972) 이후에는 장편 창작에 주력하였다.
일제 강점기 막바지에 이르러 한글 소설의 발표가 크게 제약되었을 때도 황순원은 소설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기러기」, 「독 짓는 늙은이」, 「황노인」, 「맹산 할머니」 등이 대표작이다.
황순원의 소설 문체는 흔히 시적 문체로 불리는데 이는 압축 또는 생략을 통해 대상의 핵심 속성을 드러내는 문체적 특성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대상의 사실적 재현을 겨누는 우리 소설 일반의 문체와는 구별되는 황순원의 개성적인 문체 특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황순원의 초기소설 가운데는 입사소설의 성격을 띤 작품이 많은데 「소나기」(1953), 「별」(1941), 「산골 아이」(1949), 「황소들」(1948), 「닭제」(1940)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소설의 주인공들이 죽음, 이별 등을 겪으며 인간과 세계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며 성장하는 행로는 곧 입사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황순원은 어려운 시대상황에 휩쓸려 고통 받는 인물들의 삶을 그린 소설도 많이 썼다. 해방 직후가 배경인 「집」(1948)과 「술」(1947, 발표 시 제목은 ‘술 이야기’), 6 · 25전쟁기가 배경인 「카인의 후예」(1954), 「곡예사」(1952), 「학」(1953), 「어머니가 있는 유월의 대화」(1965) 등이 이에 해당하는 작품들이다.
한편 「일월」(1965)과 「신들의 주사위」(1982) 두 장편은 각각 전근대적 신분제도(신분의식)와 가부장제도에 치여 고통 받는 인물을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제도의 폭력성을 문제 삼은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황순원 소설 속 중심인물은 대체로 세계의 폭력성에 말미암는 극한상황 속에 놓여 있지만 그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체로 그 상황에 맞서 싸우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소유자들인데 그 적극성은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성격의 것이다.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강렬한 성격의 인물들은 자기 파괴를 감행하기도 한다. 세계의 폭력성에 대한 분노를 못 이겨, 맞싸워 이길 수는 없지만 굴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살을 택하는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의 동호, 자살을 자기애의 실현이라 인식하는 「신(神)들의 주사위」 속 한영 등이 그들이다. 황순원 소설의 중심인물들이 극한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 그들이 자기 파괴조차 감행할 정도로 강렬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 등이 황순원 소설을 극적(劇的)인 것으로 만든다.
세계의 폭력성과 그것에 맞서 싸우다 파멸한다 하더라도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충돌에서 생겨나는 황순원 문학의 극성은 세계를 바꾸겠다는 변화의 욕망보다는 그대로 앉아 일방적으로 당할 수는 없다는, 그렇게 당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다는 데 근거한 자존 지키기의 의지 쪽에 더 가깝다.
젊은 사내를 따라 아내가 가출하고 난 뒤의 패배감과 공허감을 못 이겨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감행하는 「독 짓는 늙은이」의 주인공인 옹구 장인의 비장한 최후는 이 같은 자존심 지키기의 단적인 보기이다.
이 같은 성격의 황순원의 인물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하고 열어나가겠다는 적극적인 자기 개진의 의지이며 자신과 자신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책임의식이다. 이렇듯 강렬한 자기 개진의 의지와 책임의식의 안쪽에는 그것을 가로막고 억압하는 세계에 대한 분노와 함께 철저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기반성적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황순원의 인물들이 수시로 사로잡히는 ‘부끄러움’과 ‘자신에 대한 무서움의 느낌’은 많은 경우 이 같은 자기반성적 분노의 소산이다.
황순원 소설에는 타인을 해코지하는 악당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굳이 찾자면 시골 처녀를 아내 삼는다고 속이고 데려와서는 평양 색주가에 팔아먹고는 “딸년 만날 생각은 생전 말아라, 평양 색주가로 팔아먹은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고 차갑게 뇌까리는 「불가사리」(1956)의 소금장수 복코, 고향 친구를 속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두꺼비」(1946)의 두갑, 일본제국주의의 오만성과 폭력성의 상징으로 설정된 「이리도」(1950)의 일본인 등을 들 수 있는 정도이다.
장편 「신(神)들의 주사위」에 등장하는 봉룡은 그 희극적 성격으로 인해 이들 악당과는 구별된다. 타인을 해코지하는 악당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선성(善性)에 대한 작가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황순원의 문학세계는 선성의 세계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극한상황에 내몰린 인물들의, 그러나 살기 위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비극적 현실을 통해 황순원은 인간 삶의 근원적 비극성을 극적으로 증언한다. 아무도 이 덫을 피할 수 없다는 비극적 세계인식은 황순원 소설 속에 끌어들여진 구체적 사회역사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성격의 것이다.
황순원 문학의 근저에 놓인 것 가운데 하나는 ‘생명 존중의 사상’이다. ‘꿈틀거리는 생기’ 곧 생명의 기운을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가 황순원 문학 전체에 실핏줄처럼 깔려 있어 상처와 폐허의 틈새를 뚫고 솟구쳐 오르는 생명의 느낌과 소리를 포착하여 전한다. 비극적 세계인식 위에 서 있는 황순원 문학이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설파하고 있는 한국소설의 한 계보는 황순원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상처의 껴안음과 그 고통의 견딤, 치열한 자기 개진과 반성의 정신이 함께 작용하여 일구어내는 신생을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하는 작가의 가치관은 생명 실현, 생명 창조를 위한 정신이 이끄는 장대한 역동의 세계를 떠올린다. 70년에 육박하는 긴 창작생활을 완성하는 「신(神)들의 주사위」의 끝이, ‘고통을 참고 견디느라 몸부림치면서 그 속에 새 생명을 품어 키우는 노을’의 장엄으로 장식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밖에 주요작품으로는 「아버지」(1947), 「목넘이 마을의 개」(1948), 「이리도」(1950), 「물 한 모금」(1951), 「어둠 속에 찍힌 판화」(1951), 「링반데룽」(1958), 「내 고향 사람들」(1961), 「일월」(1965), 「탈」(1971), 「마지막 잔」(1974), 「주검의 장소」(1975) 등의 단편과 「별과 같이 살다」(1950), 「인간접목」(1957),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움직이는 성」(1973) 등이 있다.
아시아자유문학상(1955), 예술원상(1961), 3 · 1문화상(1966),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1983), 인촌상(1987) 등을 수상했으며 국민훈장 동백장(1970)과 금관문화훈장(2000)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