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가 지루하게 계속되던 어느 날, 서술자이며 주인공인 소년 동만의 집에 국군 소위로 전쟁터에 나간 외삼촌이 전사하였다는 연락이 온다. 동만의 외할머니가 피난 와 동만의 집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는 충격을 못 이기고 빨치산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다. 외할머니의 이런 행동은 빨치산이 되어 산속에 숨어 지내는 아들을 둔 친할머니의 심기를 크게 거슬려 두 노인은 크게 대립하게 된다. 두 노인의 대립 때문에 모든 가족이 숨을 죽이고 지내는 집안에는 으스스한 냉기가 감돈다. 그런 가운데 친할머니는 빨치산이 된 아들이 언제 돌아올 것이라는 점쟁이의 말에 따라 돌아올 아들을 맞을 준비를 서두른다. 친할머니의 분부에 따라 음식을 마련하느라 사람들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집안에는 음식 냄새가 가득 차게 된다. 그러나 점쟁이가 말한 그날이 되었지만 삼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대신 구렁이 한 마리가 나타나는데 이를 죽은 아들이 변한 것이라 생각한 친할머니는 별안간 실신하고 만다. 모두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가운데 외할머니가 나서서 감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 구렁이를 정성을 다해 달랜다. 구렁이는 마치 외할머니의 마음을 알아 본 것처럼 감나무에서 내려와 대밭으로 사라진다. 정신을 차린 뒤 이 일을 알게 된 친할머니는 외할머니에 대한 미움을 거두고 화해한다. 그리고 일주일 후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길고 긴 장마가 그친다.
「장마」는 한국전쟁이 배태한 고통과 슬픔을 증언하는 윤흥길의 많은 작품 가운데 대표작이다. 한국전쟁을 다룬 윤흥길의 소설은 역사의 폭력성에 상처 입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증언하는 것이기에 대체로 이념 대립과 정치적 투쟁의 현실, 전장에서 빗겨나 있는데 「장마」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의 폭력성에 상처 입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증언하는 「장마」는 전쟁의 폭력성을 증언하는 한편, 그 전쟁의 폭력성에 베이고 짓눌려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정신을 놓친 사람들의 상처투성이 영혼을 껴안고 위무하는 슬픈 연민의 노래이다. 그 속에 그들이 그 상처로부터 일어나 온전한 삶을 누리기 바라는 간절한 희구가 깃들여 있음은 물론이다.
1인칭 소년 서술자 시점이 특징인 「장마」는 다른 한편 성장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이 작품의 서술자인 소년 동만은 느닷없이 덮쳐와 일상이 되고 만 그 악몽과도 같은 현실에 시달리면서 성장한다. 죽음을, 인간관계의 비정함을, 세계의 폭력성을 알게 되는 한편, 의리며 신의며 순정이며 약한 자 상처 입은 자를 보살피는 이타와 연민의 마음이며 등등 지켜야 될 사람살이의 도리를 깨우치며 성큼성큼 자라나는 것이다.
윤흥길 소설의 중심 언어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 방언인데, 이는 두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서울말과 중앙중심주의에 대한 부정의식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서울말과 중앙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실 질서 속에서 사투리란 변방의, 주변부의 언어이니 설자리를 확보하기 어렵다. 그 주변부의 언어를 소설 속으로 끌어들여 중심 언어로 삼음으로써 윤흥길은 중심의 언어가 지배하는 현실을 비판하고자 하였다.
작가는 「장마」가 그의 친구인 시인 정양(鄭洋)의 아버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태어난 것임을 밝히고 있는데, 정양 시인의 아버지는 “6·25 직전 콩깍지가 콩을 삶는 저 비극적인 혼란의 와중에서 좌우익의 사상싸움에 쫓기다가 끝내 실종되고” 말았다는 것, 행방불명된 그가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점쟁이가 예언한 그날 그의 시골집 마당으로” 그 “대신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기어”들었다는 것이 그 이야기의 골자이다. 정양 시인은 그 충격적인 체험을 시 「내 살던 뒤안에」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