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자인 ‘나’는 경기도 성남에 자리한 고등학교의 교사로서 성남의 주택가에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다. 월급만으로는 부족해 집안 살림에 보태 볼 생각으로 방 하나를 세놓게 되었는데 그 방에 세든 사람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권 씨의 가족이다. 아내와 두 명의 아이 그리고 아내의 뱃속에 든 아이까지 모두 네 명의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인 권 씨는 대학을 나와 한때는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바닥까지 떨어지고 만 불행한 사람이다. 집을 장만하려고 철거민 입주권을 구해 광주 대단지에 땅을 분양받았으나 그 땅에 자기 집을 지어 올리기는커녕, ‘광주대단지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감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특이한 버릇이 있는데 자신이 가진 여러 켤레의 구두를 아주 소중하게 여겨서 언제나 공 들여 닦아 신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권 씨의 아내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한 권 씨는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으나 ‘나’는 거절한다. “그렇다. 끼니조차 감당 못 하는 주제에 막벌이 아니면 어쩌다 간간이 얻어걸리는 출판사 싸구려 번역일 가지고 어느 해에 빚을 갚을 것인가. 책임이 따르는 동정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리고 기왕 피할 바엔 저쪽에서 감히 두말을 못 하도록 야멸치게 굴 필요가 있었다.”라는 생각에 이끌려 권 씨의 절박한 처지를 돌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권 씨의 아내가 수술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집을 나갔던 권 씨는 그날 밤 칼을 들고 ‘나’의 방에 들어왔으나 ‘나’에게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자 “그 따위 이웃은 없다는 걸 난 똑똑히 봤어! 난 이제 아무도 안 믿어!”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권 씨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아홉 켤레의 구두를 발견한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광주대단지사건’이라는 큰 사건을 간접적으로 다룬 것으로 작가의 현실비판적인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등장인물의 자기반성을 통해 드러나는 윤흥길 문학의 윤리적 특성, 자존심을 지키고자 애쓰는 주인공을 통해 드러나는 윤흥길 소설 주인공의 일반적인 특성 하나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은 「직선과 곡선」, 「날개 또는 수갑」, 「창백한 중년」과 함께 연작을 이루는 중편소설이다. 윤흥길은 연작을 많이 썼는데 작가는 그 이유에 대해 “첫째로는 장편의 욕구를 연작으로 채우고자 한 것입니다. 나는 신인 작가 시절부터 장편에 대한 욕구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편을 붙잡고 매달리기가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워요. 전작 발표가 어려우니 연재를 해야 되는데 연재 지면을 얻기가 쉽지 않고, 또 장편을 쓰는 동안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장편에 전념하기가 어렵고, 그렇게 장편에 대한 욕구가 벽에 부딪히면 그 대신 연작을 쓰서 그 욕구를 푸는 식이지요.”라고 말하였다. 작가의 이 같은 말은 한국소설사 곳곳에 솟아 있는 연작 소설의 창작 배경에 대한 증언으로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