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黃順元)이 지은 장편소설. 1962년부터 1964년까지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다. 인간의 숙명적 존재 양식의 탐구라는, 장편작가로서의 황순원의 중심적 과제를 정면으로 추구하고 있는 작품의 하나이다.
인간의 숙명적 존재 양식의 탐구는 이 작품에 앞선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서 이미 제기되어 있고, 이어 그의 <움직이는 성(城)>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세 작품은 각기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황순원의 전반적인 문학세계의 자리에서 보면 일정한 맥락을 이루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인철은 장래가 촉망되는 건축공학도이다. 대학원에서 학위논문 준비중에 있으며, 근래에 사귀기 시작하여 급속도로 사이가 가까워져가고 있는 나미의 아버지로부터 건축설계를 의뢰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인철이 어느날 자기가 백정의 후손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사실은 그의 이제까지의 삶의 바탕을 근원적으로 뒤흔들어 놓는다. 그는 방황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부터 소꼽친구요, 상기도 누나처럼 다사롭게 감싸주는 다혜와 만나도 예전 같은 마음 편안함을 의식할 수 없고, 구김살 없는 정열로써 접근해오는 나미에게도 전처럼 대할 수가 없다. 누구와의 만남으로도 해소될 수 없는 완강한 외로움이 그의 마음속에 도사리기 시작한다.
그는 대폿집에 들러 술친구들과 어울려보기도 하나 그의 방황은 더해만 간다. 한편, 이제까지 자기위장으로 살아왔던 인철의 아버지는 사업의 치명적 실패로 자살해버리고, 남편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채 보람없이 살아오던 어머니는 아예 기도원으로 옮겨가버리고, 누이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불구자가 된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시련 끝에 인철은 다시금 자아를 바로 세울 수 있게 되고, 사촌형인 기룡과의 만남을 통하여 자기 고독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 고독을 딛고 일어서려는 삶의 의지를 다진다. 이 작품은 인간의 숙명적 고독의 문제를 추구하는 과제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