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판본. 1708년(숙종 34)에 현손 진휴(震休)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서우(李瑞雨)의 서문, 연보가 있고, 권말에 진휴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와 장서각 도서에 있다.
권1·2에 시 331수, 권3에 소(疏) 11편, 차(箚) 8편, 서(書) 16편, 잡저 16편, 지(識) 1편, 묘지 2편, 권4는 부록으로 시 45수, 제문·유사·화상찬(畫像贊)·가장(家狀)·묘표·신도비명(神道碑銘) 등이 실려 있다.
시는 저자의 『정유조천록(丁酉朝天錄)』·『빈접록(儐接錄)』·『신해조천록(辛亥朝天錄)』 등 시집으로부터 옮긴 것이 많으며, 중국 사신의 시에 차운(次韻)한 것과 저자가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가는 도중에 감회를 읊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밖에 이수광(李睟光)의 시에 차운한 것이 여러 편 있다. 차운한 경우에는 원운(元韻)도 아울러 싣고, 또 곳곳에서 그 시를 짓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소와 차는 대부분 사직하는 내용이다. 서(書)는 자손에게 학문에 힘쓸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 가운데 「여재상서(與宰相書)」는 흉년이 들어 왕이 감선(减膳: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임금이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것)을 하자 이를 중단하도록 권유할 것을 재상들에게 촉구한 내용이다.
잡저의 「이서장관조천시정예부변무문(以書狀官朝天時呈禮部辨誣文)」은 1597년(선조 30) 왜병과 대치하고 있을 때 왜병에 의해 피무(被誣)된 사실을 명나라에 밝힌 내용이다. 그리고 「의옥책문휘시병서당부(議玉冊文徽諡並書當否)」는 존호(尊號)를 올리는 데 대한 상소이다. 이외에도 잡저에는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있다.
부록에 수록된 시는 모두 당세의 명현(名賢)인 이덕형(李德馨)·이수광·이정구(李廷龜)·박경신(朴慶新)·차천로(車天輅)·신흠(申欽)·이귀(李貴)·정경세(鄭經世)·남이공(南以恭) 등이 저자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 지어 준 송별시다. 그의 교유 관계를 보여 줌은 물론이며, 당시 문화와 정계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