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종(法相宗)의 고승이다. 자는 범위(範圍).개성 출생. 중서령(中書令) 이자연(李子淵)의 아들이다.
11세에 출가하여 지광국사 해린의 제자가 되었고, 이듬해 복흥사(復興寺)의 관단(官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061년(문종 15)왕륜사(王輪寺)의 오교대선장(五敎大選場)에 응시하여 대덕(大德)의 법계를 받았고, 1069년(문종 23) 중대사(重大師)가 되었다.
1070년 도생승통(導生僧統)이 제자가 되었고, 그의 법을 잇게 된다.
그 뒤 왕실 내전(內殿)에서 법석(法席)을 주관하거나 사찰에서 법회를 열고 강화(講話)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1079년에 내전에서 대장법회(大張法會)를 주관하였고, 같은 해에 금산사(金山寺)의 주지로 부임하여 절을 중창하였는데 금산사의 역사상 이때가 가장 큰 규모의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가람의 증축뿐만 아니라 금산사의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을 설치하여 경전을 강독하는 한편, 교장의 판각과 유포를 위한 간경장(刊經藏)으로도 이용하였다.
당시에 인경한 것으로는 규기(窺基)의 저작인 『법화현찬(法華玄贊)』과 『유식술기(唯識述記)』를 비롯해서 유식법상계통(唯識法相系統)의 장소(章疏) 32부 353권을 교정, 개간하였으며, 그 사본을 유통시켰다.
1083년(순종 1)에는 개국사(開國寺)와 자운사(慈雲寺)에 선장(選場)을 마련하여 회주(會主)가 되었고, 그 해 승통(僧統)이 됨에 따라 현화사(玄化寺)에 잠시 머물렀다. 그 뒤 다시 금산사로 돌아가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096년 12월 봉천원(奉天院)에서 입적하였다. 세수 69세, 법랍 48세였다.
숙종은 혜덕왕사(慧德王師)라는 시호를 내렸고, 탑호(塔號)는 진응(眞應)이라 하였다. 제자로는 도생승통 등 1,000여 인이 있었다. 금산사의 동쪽 부도전(浮屠殿)에 혜덕왕사진응탑의 비명(碑銘)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