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3책. 목활자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 경위를 알 수 없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2에 시 271수, 권3·4에 소(疏) 1편, 서(書) 33편, 서(序) 1편, 기(記) 2편, 발(跋) 2편, 잠(箴) 2편, 전문(箋文) 4편, 상량문 4편, 권5에 축제문(祝祭文) 12편, 애사 3편, 묘갈명 1편, 행장 3편, 권6은 부록으로 행장 · 묘갈명 등이 실려 있다.
시는 만시(挽詩)가 40여 수 포함되어 있다. 자연의 경치를 읊은 것뿐만 아니라 「최과(催科)」 · 「진정후우제(賑政後偶題)」 · 「우시(優時)」 등과 같이 지방관으로서 당시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보고 느낀 것을 읊은 것도 있다. 정원선(鄭元善) · 정희인(鄭希仁) 등의 시에 차운(次韻)하였고, 윤동수(尹東壽) · 금영택(琴英澤) 등의 시에 화운(和韻)하였다.
서(書)는 순조 초반 영남 지방의 향교를 둘러싼 향전(鄕戰)에 대해 이의수(李宜秀) 등과 의견을 주고받은 것, 향현사(鄕賢祠) 이봉(移奉)을 둘러싼 의견의 대립을 조정하기 위해 유태좌(柳台佐)와 오천김씨(烏川金氏) 문중과 주고받은 것 등이 있다. 이밖에 답인문(答人問)은 윤증(尹拯)과 박세채(朴世采)의 예설(禮說)의 차이를 논하고, 박세채의 설을 비판하고 윤증의 설을 지지하는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