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삼당시인(三唐詩人) 중 한 사람인 손곡(蓀谷) 이달(李達, 1539~1612)의 시를 모아 간행한 시집이다. 허균(許筠)이 1618년 초간본을 간행하였고, 이후 허영(許穎)이 비각본(祕閣本)을 얻어 1693년에 재간한 것으로 목활자본 6권 1책이다. 이달의 작품은 조선 전기 송시(宋詩)를 중시하던 시풍에서 당시를 공부하는 학당(學唐)의 문을 열어, 시가 서정의 문학이라는 인식을 제고해 주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달의 시는 자유자재한 구상과 평이한 조어의 수사적 완성을 갖추었다.
이 책은 6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이달(李達)이 평소 창작했던 시 수천 편은 모두 산실되었다. 허균(許筠)이 자신이 암송하고 있던 이달의 시 200여 수와 홍유형(洪有炯)에게 얻은 130여 수 등 360여 수를 모아서, 이재영(李再榮)에게 시체별로 구분하여 6권으로 편집하게 하고, 1618년(광해군 10)에 자신의 서문을 붙여 활자로 간행하였다. 초간본은 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3644-54), 고려대학교 도서관(D1-A372)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 초간본 중에 현재 전하는 것에는 허균의 서문이 빠져 있는데, 그 이유는 허균이 역모로 처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1693년(숙종 19) 당시 경주 부윤(慶州府尹)이었던 허영(許穎)이 비각본(祕閣本)을 얻어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현재 이 중간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5223), 국립중앙도서관(한45-가20),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4-6178)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 밖에 필사본도 몇 군데 전하고 있다.
중간본 권두에는 허균의 서문과 임상원(任相元)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 1에는 오언절구 54수, 육언절구 8수, 권 2에는 칠언절구 144수, 권 3에는 오언율시 82수, 오언배율 3수, 권 4에는 칠언사운 60수, 권 5에는 고풍(古風) 11수, 권 6에는 가(歌) 6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허균은 「손곡집서(蓀谷集序)」에서 이달 시의 문예적 특징에 대한 인상 비평과 함께 이달 작품의 본질과 성과를 파악하였으며, 임상원도 「손곡집서」에서 최경창(崔慶昌), 백광훈(白光勳)을 포괄하고 권필(權韠)과 짝하는 문인이라 이달을 평하였다.
『손곡집』의 「별이예장(別李禮長)」은 김만중(金萬重)이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우리 한시사상(漢詩史上) 최고의 오언절구라 극찬한 작품이다. 장편 고시 「만랑무가(漫浪舞歌)」는 만랑옹(漫浪翁)의 활달한 검무 동작이 역동적으로 묘사되었으며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작자의 의지가 반영된 작품이다.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의 경우, 중국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크게 찬탄하여 이백(李白)과 견줄만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화학(畫鶴)」은 험난한 세상에 불우한 신분인 서얼로 태어난 자신의 처지를 사실 묘사의 수법을 사용하여 처절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달의 시에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한 것들 이외에도 사회적인 관심을 반영한 작품이 있다. 「습수요(拾穗謠)」에는 가난한 농가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고, 「예맥요(刈麥謠)」 · 「이가원(移家怨)」 등에는 젊은 아낙의 괴로운 생의 방식과 전란으로 인한 이사의 쓰라림과 이별의 아픔이 칠언절구의 간단한 형식 속에 나타나 있다.
허균의 「손곡집서」에서는 이달의 작품을 ‘염(艶)’, ‘화(和)’, ‘청(淸)’, ‘향량(響亮)’ 등 다양한 풍격이 있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그 흥을 ‘맑고도 원대한[淸遠]’ 데에다 붙였고 음절은 쟁그렁 소리내어 합해서 지어진 것은 한 시대의 묵은 것을 씻어낼 수 있었으며 고인의 자취를 이었다고 평하였다. /원고 집필자 확인이 필요한 문장입니다. 이달의 작품을 ‘염’, ‘화’, ‘청’, ‘향량’ 등의 다양한 풍격이 있는 것으로 설명한 것은 허균의 서문에 나온 평가가 맞습니다. 그러나 "그 흥을 ~ 고인의 자취를 이었다"라고 평가한 것은 허균이 아니라 임상원입니다. 임상원의 평가라 밝혀서 문장을 다듬을 경우, 기존 원고에 없던 참고 문헌(원고 집필자가 "김종서, 「손곡 이달의 악부시 수용과 미적 성취」(『韓國漢文學硏究』 44, 한국한문학회, 2009)"의 문장을 인용한 것으로 판단됩니다.)을 추가해야하는데, 작업자가 임의로 참고문헌을 추가해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더욱이, 김종서(2009: 52)에 따르면 임상원이 쓴 것은 손곡집 '발문'이지 '서문'이 아닙니다. 이 원고와 고전DB에서 제공하는 ‘손곡집’ 해제에서는 임상원의 '서문'이라고 한 부분과 상충됩니다. (고전DB의 『손곡집(蓀谷集)』에는 임상원의 서문/발문이 없어서 작업자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이상의 내용은 고전분과 김소연 선생과 검토하였습니다./
이달은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한 사람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시풍을 탈바꿈시키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조선 전기 송시(宋詩)를 중시하던 시풍에서 벗어나 당시(唐詩)를 공부하는 학당(學唐)의 문을 열어, 시가 서정의 문학이라는 인식을 제고해 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