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송계(禁松契)’·‘산계(山契)’·‘산리계(山里契)’라고도 한다.
전통사회의 연료는 거의 전적으로 나무에 의존하므로 자연히 마을 주위의 산림은 연료채취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마을 주위의 산림은 공동이용의 대상이었고, 공동이용자들이 산림의 훼손을 막고 스스로를 상호규제하기 위하여 송계가 필요하였다.
산림보호를 통하여 연료를 안정되게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선조묘역(先祖墓域)의 수호도 송계의 중요목적 중의 하나였는데, 풍수지리상 수목의 형세가 매우 긴요하였기 때문이었다.
산림보호에 대하여는 수령도 책임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송계를 적극 장려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의 형벌권도 허용하였다. 그리하여 도벌자나 송금(松禁)을 게으르게 한 자에 대해서는 태형(笞刑)이나 벌금형까지 가하였고, 심한 경우에는 고관징치(告官懲治)도 하였다.
따라서 송계는 관허계적 성격(官許契的性格)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송계를 통하여 권세가는 신분적 지배를 관철시키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송계가 마을 내 유력 씨족의 선산보호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마을 주민이 권세가의 예속민들이었을 때 그와 같은 경향이 현저하였다.
이런 종류의 송계는 상계(上契)·하계(下契) 또는 상·중·하계로 구성되었고, 하계원이 도망간 사실까지도 기록할 정도로 엄격하였으며, 또한 묘역 수목의 보호나 정화뿐 아니라 제수준비까지 맡기도 하였다. 한편 송계의 송금조처가 심할 때는 연료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초군(樵軍)들이 반발하기도 하였다.
송계는 1917년 면제(面制)가 발포되어 동유재산 및 계의 공유재산이 면유재산으로 몰수되고, <계취체규칙 契取締規則>으로 동단위자치조직으로서의 계가 급속히 쇠퇴함에 따라, 많은 지역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상당수의 지역에서 송계가 존속되어 있다. 저명한 풍산 유씨의 동성마을인 경상북도 안동군 풍산면 하회마을의 예를 들면, 씨족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위토의 일부인 산림을 동성집단성원의 연명의로 보유하면서 문중산 또는 송계산(松契山)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에는 대문중의 산과 각파(派)의 산, 그리고 근친자끼리 공유하는 산이 있고, 그 단위를 ‘패’라고 한다. 각 송계산은 해당 동성집단성원이 대소가의 차별없이 연료채취의 권리를 가지며, 벌채를 하면 공동분배하게 되어 있다. 한 송계에 권리를 가진 자는 이중으로 다른 송계에 권리를 가지지 못하게 되어 있다. 토지개혁 전에는 송계산마다 각각의 송계답이 딸려 있어서 산지기가 산림을 관리하였으나 지금은 대부분 없어졌다.
송계산의 산림을 도벌하다가 발각될 경우 제재를 받게 되는데, 보통 과중한 벌금을 물게 하며 그 벌금은 계의 기금이 된다. 송계는 연중 일정한 시기에 모임을 가지고, 그 해의 결산을 보고하고 다음해의 유사(有司)를 선출하며 식림(植林) 등의 관리문제를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