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28㎝. 1972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원래 금강저는 제석(帝釋)이 가지고 있던 전광(電光 : 번개)에 붙여졌던 이름이었으나, 불교로 수용되면서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여러 신이나 역사(力士)들이 지니는 무기를 가리키게 되었다.
또한 밀교의식에서는 금강령(金剛鈴)과 한짝이 되어 마음의 번뇌를 없애주는 상징적인 의미로 수용되어 수법(修法)의 도구로서 사용되었다. 송광사에 있는 금강저는 현재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편으로 도금이 잘 남아 있다.
전체적인 형태를 보면, 중앙 손잡이 부분과 양쪽 끝에 뾰족한 창[杵]같은 것이 3개 붙어 있는 일반적인 삼고저(三鈷杵)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고(鈷)에 비해 손잡이의 길이가 짧은 편이다.
특히 삼고는 중심고(中心鈷)를 향하여 2개의 고가 서로 맞대고 있는 형상이나, 상징적인 무기로서의 예리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 손잡이 가운데에는 공모양의 귀목(鬼目)을 중심으로 위 · 아래에 끈으로 묶인 연판대가 서로 대칭을 이루면서 장식되어 있다.
특히 귀목은 신(神)이 갖는 무한한 힘을 빌려 각종의 재앙을 물리친다고 하는 의미로서 중심에 등장하게 되었으며, 연화가 금강저의 손잡이에 장식된 것은 청정하면서도 위대한 것을 낳는 힘을 가진 상징으로서, 고를 화생(化生)시킨다는 의미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금강저는 고 아래 부분에 용구(龍口)가 표현되지 않은 점, 단순화된 귀목 형태, 고의 길이가 손잡이에 비해 긴 점 등에서 고려시대 금강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