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도열(道悅), 호는 직양(直養), 법호는 주산(主山). 경상북도 성주 출생. 친형인 규(奎)는 원불교 2대 종법사(宗法師)였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워 신동의 재주를 나타내었다고 한다.
1920년에 형의 인도로 영광에서 소태산 박중빈(朴重彬)을 처음 만나 도성이라는 법명(法名)을 받고 제자가 되어 1922년에 16세의 나이로 출가하여 전무출신이 되었다.
이 때 “헌심영부 허신사계 상전법륜 영전불휴(獻心靈父許身斯界常轉法輪永轉不休)”라는 출가시(出家詩)를 소태산에게 지어 바쳤다.
출가 후 총부 연구부서기·교무부장·영산지부장·영산교무·총부 서정원장·교감·총무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원불교 교단창립에 큰 구실을 하였다. 1925년에 수위단원(首位團員)에 피선되었다.
1946년에 그가 발족시킨 금강청년단(金剛靑年團)은 뒷날 원불교청년회의 모체가 되는 등 원불교청년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광복 후 범교단적으로 전개하였던 전재동포구호사업(戰災同胞救護事業) 서울지구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과로로 병을 얻어 원불교중앙총부에서 죽었다.
1980년에 그의 글과 후진들의 추모글을 모아 『주산종사문집(主山宗師文集)』을 간행하였다. 법위(法位)가 출가위(出家位)에 올라 종사위(宗師位) 법훈(法勳)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