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응규 ()

지헌유고
지헌유고
유교
인물
조선후기 홍문관교리, 시강원문학, 안변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원직(元直)
지헌(遲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65년(영조 41)
사망 연도
1823년(순조 23)
본관
은진(恩津)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홍문관교리|시강원문학|안변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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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홍문관교리, 시강원문학, 안변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원직(元直), 호는 지헌(遲軒). 아버지는 진사 송환극(宋煥極)이며, 어머니는 덕수이씨(德水李氏)로 통덕랑 이정상(李定祥)의 딸이다.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세에 향시에 합격하고, 1795년(정조 19)에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였다.

1798년 사간원정언이 되고, 성균관전적을 거쳐 병조좌랑을 지냈다. 1801년(순조 1) 사헌부지평이 되어서는 동료들과 함께 한 재상이 임금의 은총을 믿고 나라를 잘못되게 한 죄를 논박하였고, 그 뒤 실록청편수관(實錄廳編修官)이 되어 『영조실록』 편수에 참여하였다.

그 뒤 홍문관부수찬·사헌부헌납·강진현감·기보별어사 등을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1808년 홍문관교리를 거쳐 북평사(北評事)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고, 1810년 사헌부장령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814년에 다시 홍문관교리가 되어 황정(荒政)의 구제책을 건의하였고, 시강원문학과 안변부사 등을 지냈다. 저서로 『지헌유고(遲軒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지헌유고(遲軒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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