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진보(晉甫), 호는 성암(省菴). 아버지는 장령 송승희(宋承禧)이며,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黃氏)로 서윤 황인(黃璘)의 딸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이듬 해 정언으로 임명된 뒤 병조정랑·수찬·교리 등을 지냈다. 1597년 장령·사성(司成)·사간 등에 제수되고, 다음 해 홍문관직제학이 되어 왕에게 『중용』을 강론하였다.
1599년 호조참의가 된 뒤 병조참의·이조참의·형조참의 등 6조의 요직을 역임하고, 대사성·부제학 등을 지냈다. 1603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상사 박이장(朴而章)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황제의 명을 받아 유구국(琉球國)의 국정을 살피고 돌아와서 상전(賞典)과 옥권(玉圈) 1부, 공로를 치하한 시 1절을 하사받았다.
1606년 대사간이 되었으나 병으로 체임되었고, 1608년 당쟁에 연루되어 관직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인조반정 이후 다시 복직되어 1623년(인조 1) 이조·병조·형조 등의 당상으로 요직을 거쳐 1626년 공충도관찰사(公忠道觀察使)에 제수되었다가 사직하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성암유고(省菴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