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侍中)이 겸대한 감수국사(監修國史)의 다음 지위로 2품 이상이 겸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이 구제(舊制)대로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립될 때에 지관사(知館事)로 개칭되었다.
사관(史官)으로서 왕의 언행, 정사(政事)와 백관(百官)의 시비득실(是非得失)을 직서(直書)하였고, 이를 기초로 한 실록편찬 등을 주관하였다. 대체로 사한(史翰)의 직임을 함께 맡았다.
고려시대 사관의 제도는 당제(唐制)를 주축으로 하여 송제(宋制)를 혼용하였는데 바로 수국사·동수국사(同修國史)의 직제를 더한 것이 송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