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종목의 토지는 조선시대에 설정한 것으로 추측되는데『경국대전』제전조(諸田條)에는 자경무세지(自耕無稅地)로 규정하고 있어 민전수조권(民田收租權)을 이양한 과전·공신전과는 다른 생산관계의 토지였다.
부연하면 이 토지는 수릉군에게 수릉군이 공역(公役)에 종사하는 동안 스스로 경작할 수 있도록 2결(結)의 관유지(官有地)에 대한 경작권을 부여하고 동시에 공세(公稅)를 면제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동법이 실시된 조선 후기에는 수릉군전을 면부출세지(免賦出稅地)로 규정하여 대동세 12두(斗)만 면제하고 전세(田稅)를 부과하였다.
그리고『경국대전』 병전(兵典) 잡류조(雜類條)에 따르면 선왕릉(先王陵)과 선왕후릉(先王后陵)에는 각각 70인의 수릉군을 배정하되, 복제(服制)에 따라 상복을 입는 대(代)가 끝나 신위를 묘(廟)로부터 영녕전(永寧殿)으로 옮기면, 수릉군 5인씩을 배정하며 여타의 능묘에는 2인 내지 3인씩을 배정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