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판본. 6대손 희순(羲淳)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직할 때 유문을 수집하여 1805년(순조 5)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희순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3에 시 433수, 권4에 서(書)·서(序), 명(銘) 2편, 제문 5편, 표(表) 2편, 교서(敎書) 3편, 불윤비답(不允批答) 2편, 첩(帖) 4편, 차(箚) 4편, 소(疏) 2편, 계사(啓辭) 2편, 부록으로 연보·신도비명(神道碑銘)·묘표·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기교에 힘쓰지 않았으나 혼호(渾浩)하고 평실(平實)하여 스스로 그 체(體)를 이루었다는 평을 들었다. 오언절구·칠언절구·오언율시·칠언율시·장구(長句) 등 다양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지방관으로 부임하거나 사신으로 파견되는 사람을 전별하여 지은 것이 여러 편 있으며, 중양(重陽)·입춘(立春) 등의 절기에 읊은 것, 「야좌운(夜坐韻)」과 같이 나그네의 우수를 읊은 것이 있다. 또, 당시의 유명한 문신인 조경(趙絅)·정태화(鄭太和)·이명한(李明漢), 당나라의 두보(杜甫), 저자의 아버지 상용(商容)의 시에 차운한 것이 있다.
첩은 단오·추석절에 명나라의 장수 모도독(毛都督) 및 진장(陳將)과 화답한 내용이다. 차에는 함경도 관찰사 목장흠(睦長欽)의 혐의(嫌疑)에 대한 것과 저자가 옥당(玉堂)에 재임할 때 유백증(兪伯曾)의 파직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 있어서, 인조 연간의 정치적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상소에는 병자호란 때 아버지인 우의정 상용이 강화에서 분신자살한 사실을 밝힌 「정축송원소(丁丑訟寃疏)」가 있다. 계사에는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죽음에 대해 논한 「처치옥당계사(處置玉堂啓辭)」와 이와 관련하여 사직하는 내용의 「대사헌인피계사(大司憲引避啓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