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은 4월 3일 우정면민과 장안면민이 모인 가운데 전개되었는데, 우정면의 책임자는 차희식(車喜植)이고 장안면의 책임자는 차병혁(車炳爀)과 김영세(金永世)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만들어 군중에게 나누어주고 만세시위행진을 주도하였는데, 장안면 석포리에서 시작하여 장안면사무소를 거쳐 우정면사무소로 시위행진을 벌인 뒤 화수리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이 때 일본인 순사부장 가와바타(川端太郎)가 처음에는 공포를 쏘아 군중을 해산시키려다가 나중에는 실탄을 쏘아 군중 속에서 송(宋)노인이 쓰러지고 두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이에 격분한 군중은 투석전을 벌였는데, 최장섭(崔長燮)이 던진 돌이 가와바타의 머리에 명중, 즉사시켰으며, 흥분한 군중은 주재소 안으로 밀려들어가 기물을 파괴, 방화하였다.
그 뒤 4월 11일 새벽, 이를 보복하기 위하여 일본헌병과 경찰은 화수리에 들어와 민가에 불을 질렀다. 마을사람들은 집이 불타는 소리와 연기냄새로 잠이 깨어 마당으로 뛰어나오자, 일본군경은 그들에게 매질을 하고 총격을 가하였다.
주민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산으로 도망쳤으나, 미처 피난하지 못한 사람 수십명은 총에 맞아죽었다. 이 때 화수리에는 40호가 있었는데, 18가구만이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불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