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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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개념
아연족에 속하며 상온에서 액체 상태인 은색의 금속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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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아연족에 속하며 상온에서 액체 상태인 은색의 금속원소.
내용

원자번호 80, 원자량 200.59, 원자기호 Hg로 표시는 금속원소이다. 상온(常溫)에서 액체상태로 있으며, -38.83℃에서 녹고 356.7℃에서 끓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의약·안료(顔料)와 금속제품에 도금하고 아말감(amalgam)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삼국시대부터 일상생활에 사용되었던 수은은 16세기 초까지는 대체로 중국·일본과 아라비아 등지에서 수입되었다. 금·은·동과 같은 고체금속들과 상온에서 화합하여 아말감을 형성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도금재료로 사용되었다.

6세기 초에는 금과 수은의 아말감을 써서 구리에 도금하는 기술이 고구려에서 특히 발달하였다. 백제에서는 기술자들이 청동불상 표면에 아말감을 바르고 350℃ 가량의 온도로 가열하여 수은을 증발시키는 도금법을 일본에 전하였다.

불상의 도금보다도 더 일찍이 수은과 수은화합물이 사용된 곳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추구하던 연금술(鍊金術)이나 연단술(鍊丹術)이다. 금을 잘 달구어 독성을 제거하고 수은을 주제(主劑)로 단약(丹藥)을 만들어 복용하는 방법들은 고구려에서 많이 발전하였다.

중국 연단술의 대가 도홍경(陶弘景)은 그의 저서 ≪본초경집주 本草經集註≫(492)에서 고구려의 기술을 칭송하고 있다.

대체로 금은 독이 있어서 달구지[鍊] 않고 먹으면 사람이 죽는데, 고구려·부남(扶南)·서역 등 외국에서 만든 기(器)들은 잘 연숙(鍊熟)되어 먹을 수 있으며, 선경에서는 수은과 합하여 단사(丹砂)를 만드는 외에는 독을 우려하여 의방에서 사용하지 않고, 선방(仙方)에서는 금을 태진이라 한다.

이와 같이 금을 연숙하는 방법이 고구려에서는 이미 5세기에 알려져 있었으며, 금속을 다루는 화학적 지식은 선방에서 수은화합물인 단사를 만드는 데 응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단사는 주사(朱砂)·진사(辰砂), 또는 단(丹) 등으로 통용되었다.

그런데 유화수은은 수은의 가장 중요한 광물이다. 이 광물은 공기 중에 태워서 수은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으며, 또한 붉은색이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데 안료와 화장품으로도 쓰였다. 고구려의 고분에 그려진 벽화에는 단사가 적색 도료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선녀가 왼손에 약 그릇을 들고 오른손으로 영지(靈芝)를 채취하는 <선녀채지도 仙女採芝圖>, 평안남도 강서군의 <삼산도형 三山圖形>과 <신선도상 神仙圖像>과 같은 선도적 사상을 보여주는 벽화들은 삼국시대부터 불로장생사상의 연단술이 우리 나라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던 것을 보여준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수은은 도금법, 벽화의 도료, 연단술의 중요한 성분으로 많이 쓰였다. 그렇지만 제조기술은 별로 발전되지 않고 대체로 수입하여 사용하였다. 수은 광석은 우리나라에서 광량(鑛量)이 적기 때문에 그 당시 수은을 많이 만들지 못하였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고려 정종 7년(1041)에 아라비아에서 용치(龍齒)·점성향(占城香) 같은 여러 가지 진귀한 의약품들과 함께 수은이 수입되어왔으며, 1085년(선종 2)과 1088년·1090년·1094년에는 일본상인들이 수은·유황(硫黃)·진주 등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수입되어 쓰이던 수은을 주사로부터 만드는 방법을 1492년(성종 23)에 김중보(金仲寶)가 알아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수은광(水銀鑛)으로서 주석(朱石)의 산지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16세기 초에는 수은이 국내에서 직접 제조된 것 같으나 구체적인 제조방법과 수은의 성질에 대하여는 1834년(헌종 1)에 간행된 이규경(李圭景)의 과학기술서 ≪오주연문장전산고≫ 오주서종박물고변(五洲書種博物考辨)에 비교적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당시에 여러 사물에 대하여 우리나라에 알려진 지식들을 중국 책에서 내려오는 지식들과 비교하고 종합하여 엮은 이 책의 <수은류 水銀類>에는 수은의 여러 가지 이름, 성질과 더불어 영사(靈砂)·은주(銀硃)와 경분(輕粉) 등의 화합물들에 대한 제조법과 성질이 관찰되어 있다.

이규경에 의하면 수은은 은홍(銀汞)·사홍(砂汞)과 항(澒)이라고도 불렸으며, 해홍(海汞)·지홍(地汞)과 초홍(艸汞)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수은의 제조법은 주사를 사용하는 법이었다.

이 제조법에는 아홉 가지 방법을 열거하였는데 800년경에 저술된 당나라 책인 ≪단방경원 丹房鏡源≫에서 나온 방법을 제외하고 나머지 여덟 가지 방법들은 모두 유화수은인 주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방경원≫의 방법은 쇠비름[馬齒莧] 잎을 잘 말려 태워서 재를 그릇 안에 넣고 입구를 봉하여 땅에 묻어 49일이 지난 뒤에 꺼내어보면 수은이 만들어져 있다. 말린 마치견 10근에 초항 8냥 내지 10냥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단약비결 丹藥祕訣≫과 ≪인수옥서영 因樹屋書影≫에서 나온 중국의 제조법들도 있지만 이규경이 가장 많이 인용한 중국 책은 17세기 송응성(宋應星)의 ≪천공개물 天工開物≫이다.

이 책의 방법은 주사(HgS) 30근을 솥에 넣고 30근의 탄(炭)불을 때어 유화수은 HgS에서 수은이 기체로 승화케 하고 수은기체가 하루 동안 응축시켰다가 꺼내는 방법이다.

주사를 넣은 솥에 뚜껑을 덮는데, 뚜껑에 작은 구멍 하나를 만들고 철(鐵)로 활과 같이 구부러진 관[曲弓溜管]을 만들어 구멍에 끼운다. 이 때 솥은 소금이 섞인 진흙으로 사이를 모두 발라 막고 철관(鐵管)은 삼끈[麻繩]으로 단단히 얽어맨다.

솥과 연결되지 않은 관의 한쪽은 물이 담겨 있는 병에 들어가게 해서 솥에서 나오는 기(氣)가 들어가게 한다. 이렇게 하여 10시간[五箇時辰]을 달이면 솥 안의 주사가루가 모두 항(澒)으로 변하여 솥에 가득히 퍼져 있어 식혀서 꺼내어 쓸어내린다.

이규경이 속방(俗方)이라고 기록한 방법에서는 주를 갈아서 푸른 헝겊 위에 균일하게 가마솥 안에 펴 넣고 백자(白磁) 대접으로 덮어 소금 진흙으로 사방을 고정시켜 기가 새어나가지 않게 한다. 이렇게 하여 주위를 불로 때어 한번 끓을 때에 꺼내면 다 변하여 수은이 된다.

또 다른 속방은 주를 갈아서 자기그릇[瓷碗] 안에 바르고 따로 빈 그릇을 땅속에 묻어 곧 그 위에 주가 담긴 그릇을 엎어놓아서 누런 흙으로 두껍게 바른다. 탄불로 한 번 달여서 꺼내면 수은이 흘러 아래 그릇으로 들어간다.

주사의 가루가 적을 때에는 가루를 물에 개어 화융지(火絨帋)라는 종이에 발라 종이를 돌려 끈 조각같이 만들어서 태워 수은을 얻은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에서 수은의 원료인 주사광이 많지 않았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이규경은 위와 같은 방법으로 만든 수은을 저장하는 법(收藏法), 흩어진 수은을 모으는 법(收橵汞法), 수은의 독을 없애는 법(制汞毒法) 등과 수은의 응용법 등을 관찰하여 기록하였다.

또한 ‘수은가화위황금(水銀可化爲黃金)’과 ‘수은가화위백은(水銀可化爲白銀)’이라 하여 수은으로 값비싼 금과 은을 만들려고 애쓰던 서양의 연금술사들의 생각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수은과 금속들과의 여러 가지 반응경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수은은 금과 은을 녹여 가루로 만들어 도금하는 데 쓰인다 하여 아말감의 도금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밖에 수은에 대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서 의심나는 것은 <전의 傳疑>라는 조목으로 기록하고, 지홍과 해홍을 얻는 방법은 <잡고 雜攷>에서 다루어 수은에 대한 모든 관찰과 말들을 믿기 어려워도 빠짐없이 기록하여 후세에 남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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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천공개물(天工開物)』(송응성,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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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경과 그의 박물학」(전상운,『성신연구논문집』4·5,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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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en-Kung K’ai-Wu : Chinese Technology in the Seventeenth Century(Translated by E-tu Zeu Sun and Shion-Chuan Sun,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University park and London, 1966)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Needham,Joseph,ed., Cambridge, England,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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