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활약한 신라시대의 학승(學僧)이다.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송고승전(宋高僧傳)』 권4 혜소전(慧沼傳)에 ‘신라 승장법사’라 하여 신라인임을 알 수 있다.
또, 원측법사사리탑명(圓測法師舍利塔銘) 등에 의해서 그가 대천복사(大薦福寺)의 대덕(大德)이었고 원측의 제자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703년 당나라의 의정(義淨)이 동도(東都) 복선사(福先寺)와 서경(西京) 서명사(西明寺)에서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능단금강반야경(能斷金剛般若經)』·『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무상경(無常經)』 등과 『백일갈마(百一羯磨)』 및 『장중론(掌中論)』·『육문교수론(六門敎授論)』 등 경률론(經律論) 20부 115권을 번역하였을 때 승장이 증의(證義)가 되었다.
또, 705년 동도 내도량(內道場)에서 『공작왕경(孔雀王經)』을 번역하고 대복선사(大福先寺)에서 『승광천자경(勝光天子經)』 등을 번역하였을 때에도 증의를 맡았다.
710년 대천복사에서 『욕상공덕경(浴像功德經)』·『유식보생론(唯識寶生論)』 등 20부 88권을 번역하였을 때에도 증의가 되었다. 보리류지(菩提流支)가 『대보적경(大寶積經)』 120권 중 26회(會) 39권을 신역(新譯)하였을 때(706∼713)에도 증의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당나라에서 매우 학덕이 높은 고승으로 평가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귀국 여부와 입적(入寂) 연대 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저서로는 『금광명최승왕경소』 8권, 『범망경보살계본술기(梵網經菩薩戒本述記)』 4권, 『성유식론결(成唯識論決)』 3권, 『잡집론소(雜集論疏)』 12권, 『불성론의(佛性論義)』 1권, 『대인명론술기(大因明論述記)』 2권, 『기신론문답(起信論問答)』 1권 등이 있다.
이 중 『범망경보살계본술기』 4권만이 현존하며, 『금강명최승왕경소』는 안계현(安啓賢)이 이 책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일본의 여러 문헌에서 인용부분을 집록하여 1964년에 다시 편집한 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