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총 28장). 순국문 필사본. 필체는 여럿이나 전후 종이의 질은 동일한 장지(壯紙)이다. 비교적 정성껏 쓴 곳이 있는가 하면, 글씨가 몹시 험한 곳도 몇 군데(23∼31쪽, 또 34∼35쪽) 있다.
수록된 시조작품은 146수이며, 곡목별 편차를 지니고 있어 작품간에 분별이 잘 되어 있다.
시조의 곡목은 ‘여창우됴쳐치·듕허리·막ᄂᆡ·○자지난엽·밤얏자지난엽·계면쳣치·듕허리·막ᄂᆡ·죤자지난엽·농·우락·환계락·계락·편’이며, ‘ᄐᆡ평가’로 끝을 맺는다.
이는 여창가곡의 연창(演唱) 순서로 노래들을 수록한 것이다. 즉 ‘여창우됴쳐치’와 ‘계면쳣치’라는 곡목에서 볼 수 있듯이 19세기 가곡의 악조가 ‘우·계면조’의 양분 구도로 정착되는 『가곡원류』계 여창가곡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가곡창에 있어서 남창가곡과 여창가곡의 확연한 분별은 『가곡원류』계 가집에 이르러 표면화된다. 그런데, 이 가집의 경우 ‘여창가곡 한바탕’을 이루는 72수의 시조작품을 『가곡원류』의 여창부분에 실린 191수와 비교해보면 수록작품 대부분이 『가곡원류』의 여창부분에서 뽑아내어 편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수록된 작품의 내용적 특성은 강호한정(江湖閑情)·무상(無常)·취락(趣樂)·세태(世態)·탄로(嘆老) 등 다양하나 ‘남녀애정(男女愛情)’을 주제로 한 작품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가집 중간에 「상사별곡」·「츈면곡」·「길군악」·「황계ᄉᆞ」(18∼21쪽)와 「쳥우원별곡」(44∼45쪽, 48∼49쪽), 그리고 「단가 별죠라」(51∼53쪽) 등의 가사와 잡가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황계ᄉᆞ」 이후에 「장진쥬」와 ‘ᄃᆡ바침’이 있고 그 다음에 ‘편’이라는 항목 아래 64수의 시조작품이 별도로 기록되어 있다.
이 64수의 시조들은 가곡창(歌曲唱:5장 형식)이 아닌 시조창(時調唱 : 3장 형식이며 종장의 네번째 음보 생략)으로 불리는 사설의 특징을 보인다. 전체적인 체제로 보아 당대 기방에서의 실제 여창의 연창순서(가곡→가사→시조→잡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권말에 ‘冊主 河鐥花(책주 하선화)’란 기록과 ‘歲在辛丑七月 彰義洞外 製紙場收藏小石(세재신축칠월 창의동외 제지장수장소석)’이란 기록은 이 책의 편찬연대를 추정하는 단서가 된다.
이 책의 원래 소장자〔冊主〕는 기생 신분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小石(소석)’은 『화원악보(花源樂譜)』(이능우 소장) 권두에도 ‘小石試寫(소석시사)’란 기록이 보이는데, 가집 수집가인 듯하다.
신축년(辛丑年)은 헌종(憲宗) 7년(1841)이나 광무(光武) 5년(1901)에 해당할 것인데, 이 가집에 수록된 시조 중에 고종조(高宗朝)의 가객 안민영(安玟英)의 작품이 있는 것으로 보아 후자 쪽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단가 별조라」 하는 작품은 1910년대 대량적으로 쏟아져 나온 잡가집들에 그 곡목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단가(판소리 도창(導唱)의 기능을 갖던 ‘허두가’가 독립된 창곡으로 불린 노래)계 잡가’이므로 이 가집의 편찬시기는 고종조를 상회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이 가집의 편찬자는 19세기말 풍류방 또는 기방의 가악을 전담하던 기녀나 가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집의 의의는 순전히 여창만으로 편집된 여창가곡집이라는 점에서 당대의 풍류방이나 일반 기방문화권에 놓인 유흥문화적 약호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 될 것이다.
풍류방문화의 주 수요자였을 양반층을 비롯하여 기방문화를 이끈 한량과 왈자들, 그리고 오입쟁이로 통칭되는 불특정 다수의 시정잡배를 포괄하는 남성 고객들과 이들의 유흥 수요를 감당하고 수행했을 가객 및 기생 사이의 문화적 약호를 읽어낼 수 있는 독특한 성격의 가집이라 하겠다. 이능우가(李能雨家)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