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월피동 고인돌 ( 고인돌)

선사문화
유적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개석식과 남방식 고인돌.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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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개석식과 남방식 고인돌. 지석묘.
개설

관모봉(冠帽峰) 남쪽 경사면 높이 20∼30m 정도 되는 지점에 3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관모봉 북쪽 사면의 양상리(楊上里)에도 고인돌 13기가 산재해 있다. 1978년 반월지구 유적발굴조사단의 일원인 경희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내용

제1호 고인돌의 상석은 길이 282㎝, 너비 186㎝, 높이 44㎝의 납작한 형태로 표면에는 39개의 성혈[性穴, 일명 채흔(採痕)]이 새겨져 있었다.

이 상석의 남쪽 하부에 받침돌이 놓여 있긴 했으나 발굴 결과, 이른바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임이 밝혀졌고, 하부구조는 대부분 교란되어 있었으며 상석도 위치가 이동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석 하부에서 깊이 68㎝, 너비 65㎝ 정도의 움[土壙]이 확인되기는 했으나 그 내부에서는 한 점의 유물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제2호 고인돌의 상석은 길이 210㎝, 너비 160㎝, 높이 40㎝ 정도의 납작한 형태이나 제1호 고인돌과는 달리, 상석 하부에 받침돌들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남방식(南方式), 혹은 기반식(碁盤式) 고인돌로 판단된다. 상석 하부에는 남북 길이 178㎝, 동서 너비 90㎝ 규모의 타원형 움이 원상태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출토 유물들로는 홈자귀[有溝石斧] 조각, 자갈돌을 그대로 사용한 망치돌, 민무늬토기조각 3점이 발견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움을 메우고 난 뒤 그 위에 버려졌던 것이다.

홈자귀조각은 날부분만 10㎝ 정도 남은 것으로서 대체로 표면이 거친 조잡한 모습이었다. 길이 9㎝, 너비 7.5㎝ 크기의 둥근 망치돌 한 쪽 끝에는 사용결과 생긴 때린 흔적[打痕]이 남아 있었다. 민무늬토기편들은 낮은 온도에서 구워진 붉은 색의 연질로서 내부에는 굵은 모래알들이 섞여 있었는데, 크기가 너무 작아 토기의 어느 부분들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의의와 평가

월피동 고인돌 발굴의 성과는 한반도 중부지역에 개석식과 남방식 고인돌이 함께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점이다. 또한 주변에서 조사, 발굴된 민무늬토기시대 움집과 돌무지널무덤[積石土壙墓]과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반월지구 유적발굴 조사보고』(반월지구 유적발굴 조사단,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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