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경상북도 선산에서 출생했다. 선산공립보통학교와 대구농림학교를 졸업했다. 1930년 영화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의 일본영화연극학원에 입학했다. 1935년 귀국해 조선일보의 사진부 기자가 되었는데, 이 무렵 각종 매체에 영화와 관련된 글을 썼다. 1937년 「순정해협」의 연출을 시작으로 영화감독의 길에 접어들었다. 1937년 청구영화사를 설립했고, 영화를 제작했으나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1939년 조선영화인협회에 가입한 이후, 일제의 침략정책을 옹호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1942년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가 제작한 「병정님」의 진행을 맡았으며, 「감격일기」와 「우리들의 전장」이라는 친일영화를 연출했다.
해방 이후 안석영(安夕影)·윤봉춘(尹逢春)·이구영(李龜永) 등과 함께 한국영화협의회를 조직, 영화재건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청구영화사를 재설립, 다수의 영화를 연출했다. 1951년 한국전쟁 중에는 반공영화 「삼천만의 꽃다발」을 연출했다. 이후에도 「찔레꽃」(1957)·「노들강변」(1957)·「여자의 일생」(1962)·「홍콩부루스」(1971) 등을 남겼다. 1981년 4월 21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