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때의 화원승(畫員僧). 젊어서는 무뢰배(無賴輩)로서 다른 승려들과 어울리지 못하였다. 하루는 절안의 승려들이 그림을 공부하는 것을 보고 배우고자 하는 뜻을 일으켜서 가르쳐줄 것을 청하였으나 평소의 무뢰를 업신여겨 지도를 거부하였다.
이에 혼자 방에 들어가서 1년 동안 남몰래 여러 부처님의 불화(佛畫)를 연구하는 데 전념하였다. 이를 이상히 여긴 화승(畫僧)이 찾아가보니 그리는 법이 매우 우수하여 정식으로 가르침을 받은 이들을 능가하고 있었다.
천부적인 재질이 있음을 알고 그때부터 정식으로 가르쳤는데, 묘리(妙理)를 빨리 터득하였고 기술이 빼어나서 큰 진보를 보았다. 얼마 뒤에는 스승도 그의 솜씨를 따를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전라북도 무주의 적상산성에 있던 승려가 괘불(掛佛)을 그려 달라고 청하였으므로, 스승의 명을 따라 괘불을 그리기 위하여 적상산성으로 갔다. 적상산 입구에 이르렀을 때 큰 소나기가 오다가 그치고, 금빛의 손이 나타나서 그의 손을 어루만져주었다고 한다.
이때 그린 괘불탱화가 첫 작품이었지만 명작으로 평가받았다. 그뒤 전국의 이름 있는 사찰에 많은 탱화들을 남겼으며, 조선시대 화원승 가운데 최고봉으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