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족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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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부터 안재홍이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하여 주창한 정치적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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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신민족주의는 해방 이후부터 안재홍이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하여 주창한 정치적 이념이다. 1945년 9월 안재홍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국민당이 민족주의 진영의 대동단결을 위해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를 창당의 기본이념으로 내걸었다. 안재홍의 신민족주의는 균등사회와 공영국가를 지향하는 신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존립하는 전민족 동일운명의 민족주의이다. 이는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좌우합작, 즉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조화시키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냉전 구도가 굳어져 좌우합작의 실패, 분단 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신민족주의는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목차
정의
해방 이후부터 안재홍이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하여 주창한 정치적 이념.
내용

1945년 9월 1일에 안재홍을 위원장으로 하여 결성된 조선국민당이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를 내걸었으며, 안재홍도 9월 4일 발표 성명을 통해 민족주의 진영의 대동단결을 위한 조선국민당 창당의 기본이념이 신민족주의임을 밝혔다. 9월 22일에 탈고해 동년 12월에 간행된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에서 안재홍은 좀 더 구체적으로 신민족주의를 제시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에는 “고대(古代) 이래의 조국고유(祖國固有) 민족자발(民族自發)의 민족주의”가 있다고 하면서도 식민지배와 해방이라는 “동일예속(同一隸屬)과 동일해방(同一解放)에서, 모든 진보적(進步的)이요 반항제국주의적(反抗帝國主義的인 지주와 자본가와 농민과 노동자가, 한꺼번에 만민공생(萬民共生)의 신발족(新發足)을 함을 요청하는 역사적 명제하에 있으므로” “그것을 현대적(現代的) 의의(意義)에 발전시키어” 만들어진 것이 신민족주의라고 설명했다.

1947년 12월에 발표된 「역사와 과학과의 신민족주의」에서도 안재홍은 “지금까지의 민족주의(民族主義)는, 왕실(王室)과 귀족(貴族)과 지주(地主) 또는 자본벌(資本閥)과 혹은 군벌(軍閥) · 종파(宗派) 등이 부(富) · 권(權) · 지(智) 등을 독점 지배하고 근로역작(勤勞力作) 등을 저희들 홀로 면제받는, 지배(支配)와 피지배(被支配), 압박(壓迫)과 피압박(被壓迫), 이른바 착취(搾取)와 피착취(被搾取)가 참으로 존재하는 계급분열(階級分裂) 및 대립적인 독점지배계급(獨占支配階級) 본위적(本位的)인 국가주의(國家主義) 또는 민족주의(民族主義)”였다고 비판하면서 “균등사회(均等社會) · 공영국가(共榮國家)를 지향(指向) 완성(完成)하는 신민주주의(新民主主義) 즉 진정한 민주주의(民主主義)의 토대(土臺) 위에 존립되는 전민족(全民族) 동일운명(同一運命)의 민족주의(民族主義)”를 신민족주의로 제시했다.

이와 같은 이념은 1920년대부터 안재홍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기도 했지만 해방을 맞이해 “초계급적(超階級的) 통합민족국가(統合民族國家)”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지배계급 본위였던 과거의 민족주의와 다른 새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안재홍은 “신민주주의(新民主主義)의 사회건설(社會建設)의 토대(土臺) 위에 구축현현(構築顯現)되는” 것으로 신민족주의 노선을 설명하기도 하고, 또 신민족주의를 신민주주의와 ‘동질이체(同質異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가 생각하는 신민주주의란 “현대(現代) 조선(朝鮮)이 그 대중적(大衆的) 공생권(共生權)의 강력한 요청에서 수정(修正) 확충(擴充) 비약(飛躍) 발전(發展)을 기하는 신민주주의(新民主主義) 그것은, 오로지 경제균등(經濟均等)을 제일의(第一義) 혹은 기본조건(基本條件)으로 삼는, 진정 타당한 유물사관적(唯物史觀的) 토대(土臺)에서 건축(建築)되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주의적인 경향을 띤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신민족주의의 특색을 “폭력(暴力)에 하소하는 계급투쟁(階級鬪爭)을 지양(止揚) 청산(淸算)시키며, 또는 적색지배(赤色支配)를 도입하는 공산모략(共産謀略)을 방지(防止) 극복하고, 동포(同胞)와 조국(祖國)과 자유(自由)의 때문에 전민족(全民族) 협동(協同)하는 진정한 민주주의(民主主義) 민족자주(民族自主) 독립국가(獨立國家)로서 민족문화(民族文化)를 앙양(昻揚) 심화(深化)하면서, 국제협조(國際協助)의 노선(路線)에 병행(並行) 쌍진(雙進)하는 것”이라고 하여, 그것은 공산주의와는 분명히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또한 대외적으로도 “국제협동(國際協同)의 정립적(鼎立的) 분담자(分擔者)”로 민족국가를 위치시켜 국제적인 협조를 강조하였다.

의의와 평가

안재홍이 제시한 신민족주의는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조화시키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현실정치에서 좌우합작을 추진하는 사상적 기반이었다. 하지만 냉전 구도가 굳어져 좌우합작의 실패, 분단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신민족주의는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참고문헌

『안재홍선집』2(안재홍선집간행위원회편, 지식산업사, 1983)
「안재홍의 민족통일노선과 신민족주의」(임형진, 『정신문화연구』97, 2004)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이념의 형성과정과 조선정치철학」(김인식, 『한국학보』93, 1998)
「안재홍의 신국가건설의 이념」(김인식, 『한국민족운동사연구』20,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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