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한 생애는 전하지 않으나, 650년(진덕여왕 4)에 당나라에 머물면서 현장(玄奘)이 대자은사(大慈恩寺) 번경원(翻經院)에서 『본사경(本事經)』 7권을 번역할 때 필수(筆受)가 되었다.
이듬해 『십륜경(十輪經)』 10권을 역출(譯出)하였을 때에도 그 경의 서(序)를 지었다. 현장 문하의 대표적인 수제자이자 유식학(唯識學)의 대가였던 그는 많은 저술을 남겨 후일의 유식학승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통일신라시대의 도륜(道倫)은 『유가사지론기(瑜伽師地論記)』를 저술하면서 신방의 설을 많이 인용하였고, 그때마다 “신라방사운(新羅昉師云)”이라 하였다.
또, 원신(源信)은 『일승요결(一乘要決)』을 저술하면서 그의 설을 인용하고 “신라황룡사사문(新羅皇龍寺沙門)”이라 하였으며, 흔히 그를 ‘대승방(大乘昉)’이라고 부른다. 저술은 9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중 『대승대집지장십륜경서(大乘大集地藏十輪經序)』 1편만이 현존하고, 『십륜경초(十輪經抄)』 3권과 『십륜경소(十輪經疏)』 8권, 『십륜경소』 3권, 『십륜경음의(十輪經音義)』 1권, 『순정리론술문기서(正理論述文記序)』 1편, 『성유식론요집(成唯識論要集)』 13권, 『현유식론집기(顯唯識論集記)』 1권, 『종성차별집(種性差別集)』 3권 등은 전래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