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치량(稚良), 호는 애산(艾山). 신심(申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기한(申起漢)이고, 아버지는 신혼(申混)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정세규(鄭世䂓)의 딸이다.
1667년(현종 8) 진사가 되고 1671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2년 설서(說書)에 임명되었고, 1675년(숙종 1)에는 홍문록에 추천되었다.
그러나 이 때에 홍문관의 관리로는 발탁되지 못하여 신선온의 재주를 아끼는 대신들에 의하여 그 원인이 문제화되기도 하였다. 이듬해 12월 정언(正言)에 제수되었으나, 부임 전에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왕명을 받들고 영외(嶺外)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왕은 신선온의 사망을 몹시 애석히 여기고 장례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