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

개신교
문헌
1932년 1월 김인서(金麟瑞)가 한국교회의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고 기독교 복음으로 교회일치를 추구하고자 복음신앙 · 영화운동 · 인화주의의 3대 강령을 문서로 전하기 위하여 창간한 개신교 월간잡지.
문헌/연속간행물
창간 연도
1932년 1월
폐간 연도
1956년
간행자
김인서
간행주기
월간
총호수
129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신앙생활』은 1932년 1월 김인서(金麟瑞)가 한국교회의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고 기독교 복음으로 교회일치를 추구하고자 복음신앙·영화운동·인화주의의 3대 강령을 문서로 전하기 위하여 발행한 기독교 잡지이다. 1932년 1월 평양에서 창간하여 1941년 5월에 정간되었고, 1951년 부산에서 속간, 발행하다가 1956년에 폐간되었다. 국판 34면 내외의 월간으로 2개월 합병호의 경우가 많았으며, 전부 합쳐 129호까지 발행되었다.

정의
1932년 1월 김인서(金麟瑞)가 한국교회의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고 기독교 복음으로 교회일치를 추구하고자 복음신앙 · 영화운동 · 인화주의의 3대 강령을 문서로 전하기 위하여 창간한 개신교 월간잡지.
창간 경위

1930년대 한국교회가 혼란과 위기에 처한 가운데 민족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 교회 일치를 모색하며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전하려는 취지에서 김인서가 개인잡지로 창간하였다.

당시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큰 시련을 겪는 시기였다. 일제가 교회에까지 주2를 강요하였고, 주3는 서북계와 남부의 세력이 주도권 싸움으로 분열되었고, 장로교회가 이단으로 주5 주6에서도 배척한 적극신앙단이 형성되었다. 감리교와 장로교가 공동 사용하던 찬송가를 폐지하였고, 아빙돈 단권주석 번역진에 참여한 인사들이 장로교 총회에서 단죄되는 등 교회 내 갈등이 심각하였다. 이런 가운데 김인서는 기독교 잡지 『신앙생활』을 창간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를 강조하는 주7의 신학, 즉 교회일치 신학의 토대 위에서 분열되고 혼란한 한국교회의 일치를 추구하였다.

구성과 내용

1932년 1월에 발행된 창간호(제1권 제1호)는 표지에서 ‘축 성탄’을 표기하여 신년호이면서 성탄 기념호임을 보여주고 있다. 표제 ‘신앙생활’ 위에 조금 작은 글자로 ‘그리스도 中心의’를 표기하여 기독교 진리가 내용 구성의 중심이 될 것임을 나타냈다. 창간호부터 제3호까지 첫 글은 ‘宣言’을 제목으로 주9 또는 사설 성격의 글을 싣고 있다. 국한문혼용이고 주10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편집되었다. 분량은 34페이지 안팎이다.

제2호(1932년 2월호)에는 게재된 광고가 눈길을 끈다. 평양 의창모자점을 소개하는데 유료 상업 광고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제3호는 36페이지로 분량이 조금 늘었고, 평안 양화점 광고가 35페이지에 평양통신과 함께 실렸다. 제5호부터는 상업 광고가 없고 알림만 있다.

창간호의 목차를 보면, 宣言, 三綱領(福音信仰, 靈化運動 人和主義), 聖誕說敎, 聖山의 靈啓, 너희는 와서 議論하자, 殉敎者 나붓, 朝鮮의 첫 번大復興會實記, 主의 膝下에서, 옵아듸아書의 硏究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변천과 현황

1941년 6월호를 46페이지 분량의 주11로 발행하면서 폐간광고를 게재한다. 이후 1951년 7·8월호(합호)를 다시 발행하면서 창간 선언을 한다. 김인서는 10년 전 폐간광고를 했기 때문에 다시 창간한다고 하는 것으로 밝혔으나, 일제의 주13 와중에 폐간에 이르게 된 것을 감안할 때 재창간보다는 실질적으로 주14이란 표현이 보다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1956년 제1호(1·2월호)가 34페이지 분량으로 발행되었고, 상업광고는 없다. 1956년 제2호(3·4월호)는 본문은 없고 목차만 주15에서 확인된다. 본문은 보존이 안 된 것으로 추정되며, 1956년 폐간된 것으로 보인다. 1955년 9월호의 성만찬이 영인본에서 확인되는 마지막 글이다. 당시 3,200부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김인서가 이 잡지의 사장이요 편집자, 기자, 사원이 되어 심부름꾼 하나 없이 단독으로 발행하였다.

의의 및 평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하던 시기이면서 한국교회의 분열과 혼란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통주의와 주16 입장을 견지하면서 교회 내 주17를 배격하였고, 서서히 밀려들어 오던 자유주의 주18의 물결에 경종을 울렸다. 교회 내의 온갖 주20와 사이비 이단에 대해 예리한 필치로 그것들의 비복음성을 파헤쳐 나갔다. 주21 주22로서 오랜 세월을 보낸 김인서는 하나님의 서기임을 자처하면서 『신앙생활』을 통해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지켜가고자 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연세대학교 기독교문화연구소, 『남은의 신학사상: 김인서 목사 기념강좌 논문집』(연세대학교 신과대학, 2000)
정인영 편, 『김인서저작전집(金麟瑞著作全集)』(교문사, 1973)

논문

김중기, 「남은의 「신앙생활」에 대한 기독교윤리학적 조명」(『김인서의 신학사상』, 연세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2000)
주석
주1

기쁜 소식. 우리말샘

주2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우리의 종교와 사상 자유를 억압하기 위하여 신사에 배례하도록 강요하던 일. 우리말샘

주3

장로교 교파에 속한 교회. 우리말샘

주4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道). 우리말샘

주5

죄를 처단하다. 우리말샘

주6

감리교 교파에 속하는 교회. 우리말샘

주7

기독교의 교파와 교회를 초월하여 하나로 통합하려는 세계 교회주의 및 그 운동. 이를 실천하기 위한 세계 교회 운동은 여러 가지 형태로 전개되고 있으며 1948년에는 세계 교회 협의회가 결성되었다. 우리말샘

주8

예수에 대한 칭호. 머리에 성유(聖油)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나 구세주라는 뜻이다. 우리말샘

주9

책의 머리말. 우리말샘

주10

글씨를 위에서 아래로 써 내려가는 일. 또는 그런 방식. 우리말샘

주11

신문, 잡지 따위 정기 간행물의 맨 마지막 호. 우리말샘

주12

신문, 잡지 따위의 정기 간행물의 첫 번째 호(號)를 펴냄. 우리말샘

주13

식민지 상태나 종속 상태에 있는 민족의 민족성을 말살하여 그 종속 관계를 영구화하기 위한 지배 민족이나 국가의 정책. 우리말샘

주14

간행을 중단하였던 신문이나 잡지 따위를 다시 계속하여 간행함. 우리말샘

주15

원본을 사진이나 기타의 과학적 방법으로 복제한 인쇄물. 우리말샘

주16

복음을 받들어 실천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주의. 특히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말샘

주17

가톨릭교회에서 국가적 교회나 교구의 독립성을 반대하고 권력의 집중과 교황청의 영향력을 지지하는 경향이나 태도. 우리말샘

주18

기독교 신학의 한 유파. 성경 해석의 바탕을 이성에 두며 성경의 권위로부터 자유를 주장하고, 성경 연구에서 교의학적(敎義學的)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적으로 연구한다. 우리말샘

주19

위급한 일이나 비상사태를 알리는, 종이나 사이렌 따위의 신호. 우리말샘

주20

분파를 일삼거나 분파의 이익 따위만 노리는 태도. 우리말샘

주21

교직(敎職)을 가지지 않은 일반 신자. 우리말샘

주22

글을 지어 발표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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