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시대 선전관, 군자감정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계임(季任)
송헌(松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고령(高靈)
주요 관직
선전관|군자감정
관련 사건
임진왜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선전관, 군자감정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계임(季任), 호는 송헌(松軒). 신덕린(申德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신홍해(申弘海)이다. 수군절도사 신여량(申汝樑)의 동생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임진왜란 당시, 왕을 호종하던 중 갈증을 호소하는 왕에게 술을 올리기도 하여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풍이(馮異)에 비정되었다.

뒤에 선전관이 되어 1597년 고금도전투(古今島戰鬪)에 형 신여량과 함께 참여하여 싸움마다 이김으로써 은대(銀帶)를 하사받고,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제수되었다. 1640년(인조 18) 진도에 들어가 적의 머리를 100여 급 베어 선무(宣武)의 공에 녹훈되었다. 나주 충장사(忠莊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