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여(申禹汝, 1882~1923)는 함경북도 경흥군(지금의 라선특별시) 출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 본명은 신대필(申大弼)이다.
1910년 대한제국 멸망 후 만주로 이주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중국 훈춘〔琿春〕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석하여 연설을 하였다. 같은 해 문창범, 이동휘 등이 지휘하는 의용병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김규면이 주도한 대한신민단에 참여하였다.
1921년에 러시아 옌하이저우〔沿海州〕에서 솔밭관 한족공산당의 상무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으며, 솔밭관 한족공산당의 무장부대인 우리동무군을 지휘하여 러시아 적군(赤軍)과 함께 러시아 백위군(白衛軍) 및 일본군에 맞선 전투에 참여하였다. 1922년 3월에는 우리동무군의 사령부장 자리에 올랐다.
같은 해 고려혁명군 옌하이저우 총지부의 서부사령관이 되어 러시아 백위군 및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옌하이저우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러시아 백위군과 적군 간에 내전이 전개될 때는 적군 편에서 참전하였다. 1922년 10월 시베리아 내전이 끝나고 적군이 한인 무장부대를 무장해제(武裝解除)할 때 국외 추방되었다. 이후 가족들과 상봉하였으나 이듬해 병에 걸려 사망하였다.
199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追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