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의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세자익위사시직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가상(可象)
취촌(醉村), 명발와(明發窩)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5년(숙종 11)
사망 연도
1756년(영조 32)
본관
거창(居昌)
주요 관직
세자익위사시직
정의
조선후기 세자익위사시직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가상(可象), 호는 취촌(醉村)·명발와(明發窩). 아버지는 신제윤(愼齊尹)이다. 이재(李縡)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는 큰아버지인 신후윤(愼後尹)에게 수학하여 시에 능하였으며, 여러 번 향시에 합격하였다.

50세를 전후하여 당한 부모의 상에 상례를 치르는 절도가 엄하였다. 이후 벼슬길을 단념하고 이재의 문하에서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서명(西銘: 송나라 장재(張載)가 인애(仁愛)의 원리를 밝힌 글)·태극도설 등의 공부에 골몰하였다.

이재가 죽자, 3년간 심상(心喪: 마음속으로 상을 당한 것처럼 슬퍼함.)을 행하였다. 1751년(영조 27) 학행(學行)으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천거,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 해 가을에 세자익위사시직(世子翊衛司侍直)에 제수되자 “일흔 넘어 첫 벼슬이지만 원량(元良: 왕세자) 한번 뵙는 것이 소원이었다.”하고 벼슬에 나아갔다. 왕세자에게 『서경』을 진강(進講),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뜻을 상설하여 세자의 칭찬을 받았다.

참고문헌

『고산집(鼓山集)』
집필자
반윤홍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