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으며, 고려 왕실 내전(內殿)에 있는 십원전(十員殿)의 감주(監主)로 있었다. 1270년(원종 11)에 강화도 천도를 마치고 다시 개경으로 돌아올 때 삼별초(三別抄)가 난을 일으켜서 그 소란함이 강화도 천도할 때보다 더 하였다.
이 경황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부처님의 진신치아(眞身齒牙)를 가지고 나왔으므로 삼별초의 난으로 인한 치아의 분실을 막을 수 있었다. 뒤에 왕에게 진신치아를 바치자 원종은 그 공을 찬탄하면서 크게 포상하고 빙산사(氷山寺)에 머물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