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정여립의 모반사건으로 처형된 이발형제의 장사를 지내주다 유배되고, 인목대비 폐비론의 부당함을 주장하다 옥사한 문신.
이칭
중오(仲悟)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56년(명종 11)
사망 연도
1616년(광해군 8)
본관
청송(靑松)
주요 관직
동몽교관
관련 사건
정여립의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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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정여립의 모반사건으로 처형된 이발형제의 장사를 지내주다 유배되고, 인목대비 폐비론의 부당함을 주장하다 옥사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중오(仲悟). 할아버지는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심강(沈鋼)이며, 아버지는 증 호조정랑 심지겸(沈智謙)이다. 이이(李珥)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작은아버지 병조판서 심충겸(沈忠謙) 밑에서 오로지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1589년(선조 22) 이발(李潑)형제가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자, 장사지낼 사람이 없음을 슬퍼하여 그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내 주었다. 이에 연루되어 부령에 유배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풀려나 면천으로 돌아와 경사를 연구하였다.

1615년 처음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다. 이때 대북파들 사이에서 정인홍(鄭仁弘)을 추대하여 인목대비의 폐비론을 성립하고자 획책하자, 대사헌 한찬남(韓纘男)에게 이 사실을 폭로하고 부당함을 말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자기가 하옥되어 경성에 안치되었다가 1년 만에 죽었다.

참고문헌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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