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덕기(德器). 심속(沈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심계현(沈啓賢)이고, 아버지는 광주목사(光州牧使) 심탁(沈鐸)이다. 어머니는 조정경(趙正經)의 딸이다.
1741년(영조 17) 7월에는 관학유생(館學儒生)으로서 사원(祠院)을 훼철하지 말 것을 상소하였다. 1755년 9월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같은 해 12월 정언(正言)에 임명되었고, 1760년 10월 이후에는 교리(校理)·시독관(侍讀官)·승지·대사성을 거쳐 1763년 7월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같은 해 9월 대사성으로 재차 전보되었으며, 11월에는 정상순(鄭尙淳)에 이어 이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그 또한 향관(享官)으로서 파직되었다. 1765년 2월에는 전라감사로서 관내 임피현(臨陂縣)의 전정문란(田政紊亂)을 양전(量田: 토지측량)을 통하여 바로잡았으며, 이후 승지·홍문관부제학을 역임하였다. 1768년 4월에는 집의(執義) 김회원(金會元)으로부터 국록을 축내고 사리사욕에 빠진 자라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으나, 영의정 김치인(金致仁)의 도움으로 화를 면하였다.
이후 공조참의·이조참의·승지·대사헌·대사성·형조참판·비변사제조·대사간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1776년(정조 즉위년) 9월에 서명선(徐命善)·정홍순(鄭弘淳) 등과 함께 『천의소감(闡義昭鑑)』의 찬집당상(纂輯堂上)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