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晋州).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왜가 소지하였던 조총(鳥銃)으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충한은 오응림(吳應林)과 함께 장인(匠人)들을 거느리고 포로가 된 왜병으로부터 조총의 제작술을 익혔다.
이로 인하여 조선의 조총술은 큰 발전을 보게 되었다. 그 뒤 1602년 7월에 임해군(臨海君) 이진(李珒)에 의하여 장살(杖殺)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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