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사용(士容), 호는 욱재(勗齋). 영의정 심회(沈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심원(沈湲)이고, 아버지는 심순문(沈順門)이다. 어머니는 신영석(申永錫)의 딸이다.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의 동생이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불렸으며, 1537년(중종 32)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또한 1546년(명종 1) 문과중시(文科重試)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부응교(副應敎)로 등용된 뒤 시강관(侍講官)으로 임금의 학문을 돕다가 직제학이 되어 조정의 공문서를 도맡아 작성하였다. 그 뒤 병조참지가 되어 국방에도 관여하였다.
1548년 우승지·좌승지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를 지내고, 1550년 예조참판이 되었으며, 이어서 대사헌·형조참판·한성부판윤을 거쳐 우의정이 되었다. 같은 해 좌의정이 되었다가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이듬해 권력남용과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삼사의 탄핵을 받고 사직하였다. 그 뒤 아부한 죄로 관작을 삭탈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