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경기도 광주군수를 지낸 심종협(沈鍾協)이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에 유학했다.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美術學校)에서 데생 훈련을 받은 후 1936년 제15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노어부」를 출품해 특선했고, 이듬해에는 「해변」으로 총독상을 수상했다.
1940년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 때는 「소녀들」과 「흥아를 지키다」의 두 작품이 특선과 입선을 했다. 1940년 「시국과 미술」(『신시대』1941.10)에서는 미술을 무기화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1940년 황도학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1941년에는 조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조선미술가협회의 이사로 참여했다. 1943년에는 단광회(丹光會)에 참여했다. 1944년 조선미술전람회 때는 참여작가로 활동했다.
해방 이후에는 친일파로 분류되어 조선미술건설본부에서 제외되었으나,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이화여자대학교에 미술과가 설치되면서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박물관장을 역임했다. 1962년 8월 6일 사망했다. 대표작으로 「포즈」(1939), 「비원」(1960) 등이 있다.
심형구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3·1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9: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479∼504)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