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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12족에 속하며 질이 무른 청백색의 금속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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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주기율표 12족에 속하며 질이 무른 청백색의 금속원소.
내용

원소기호 Zn, 원자번호 30, 원자량 65.38, 녹는 점 419.47℃, 비중 7.14이다. 아연의 광석은 섬아연광(ZnS)·능아연광(ZnCO₃)·이극광(Zn(COH)₃ZnO SiO₂) 등이 있으나 현재 제련용의 주축이 되는 광석은 황화철이다.

아연은 상온에서는 단단하고 좀 메지므로 가공하기 힘들지만, 100∼115℃로 가열하면 전성(展性)·연성(延性)이 대단히 증대하여 박판(薄板)으로 압연하든가 선(線)으로 만들 수 있다.

200℃ 이상에서는 여리게 되어 분말로 만들 수 있다. 습한 공기중에 놓아 두면 표면에 염기성 탄산아연[ZnCO₃·Zn(COH)₂]의 피막이 생겨 내부의 부식을 방지한다.

그러므로 박강판의 표면에 아연을 도금해서 강판의 부식을 방지한다. 또 전지의 극판(極板)·인쇄판재·합금용 등에 쓰인다. 분말 또는 산화아연(ZnO)은 페인트의 안료(顔料)로 사용된다.

아연의 제련 역사는 금속아연으로 알려지기 이전 오랫동안 청동·황동 등 합금으로 먼저 시작되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황해도 황산군은 노감석(爐甘石, 夌亞鉛鑛)의 산지로 알려졌다.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오주서종박물고변에 적동 6근마다 아연 4근을 서로 선후하여 오지항아리에 넣고 녹인 뒤에 완전히 냉각하여 굳어졌을 때 꺼내면 가장 좋은 황동을 얻을 수 있다고 썼다.

또 이규경은 노감석을 쓰는 경우에는 동 1근과 노감석 1근을 같은 방법으로 제련하면 황동 1∼5근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연은 420℃라는 낮은 온도에서 녹고 900℃에서는 벌써 끓어서 증기(ZnO)로 달아나기 때문에 1,000℃ 이상으로 가열해야만 되는 청동의 주조과정에서 아연을 넣어 합금을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17세기 초의 유명한 기술서인 『천공개물(天工開物)』에 의하면 “아연은 고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근래에 와서 알려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아연을 포함한 비철금속 제련기술이 고려 이래 조선 중기에 이르는 동안 상당한 수준의 정련가공기술 발달이 있었으나 이규경이 기술한 황동제련기술 이외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 제련으로 쓰이는 방법으로는 건식증류법(乾式蒸溜法)과 습식제련법(濕式製鍊法)이 있는데, 아연광의 배소(焙燒)는 건식제련용이든 습식제련용이든 광석 중의 황화아연(ZnS)을 산화아연(ZnO)으로 완전 배소함이 바람직하다.

건식법으로는 수직식 증류법, 전열법 및 납·아연을 동시에 제련하는 I.S.P.(Imperial Smelting Process) 등이 있고, 과거에 사용되던 수평식 증류법은 현재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습식제련용 배소광(焙燒鑛)은 전황(全黃)의 함량을 1.5% 이하로 배소한 소광(燒鑛)이라야 한다. 이보다 많으면 전해공정의 순화과정에서 황(S)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황산아연의 일부를 결정으로 배출해야만 균형이 이루어지므로 애로점이 된다.

아연의 역사는 청동·황동 등 합금으로서 시작되었으며, 한반도에서는 서기전 3, 4세기경부터 청동문화를 창조하였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동과 주석 또는 아연으로 된 청동 및 황동의 정련가공기술이 상당히 발달되었고, 중국 중원에까지 명성이 높았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되는 청동유물은 주로 검·동검·제기·거울 및 기타 장신구이며, 그들 중에서 2, 3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도 있다.

청동유물은 성분으로 보면 구리-주석(Cu-Sn), 구리-주석-납(Cu-Sn-Pb), 구리-아연-주석-납(Cu-Zn-Sn-Pb)의 3종이 있다.

나진(羅津)·초도(草島)에서 발굴된 ‘달아매는 치레거리’에는 구리·주석 이외에 아연이 13.7%나 들어 있고 황해도 봉산군에서 발굴된 ‘잔물무늬거울’과 ‘주머니도끼’에도 각각 아연이 7.36%와 24.5%나 들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청동에 아연을 합금하는 기술이 이 당시에 개발되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또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오주서종박물고변에 황동 및 청동의 합금·제련기술 및 열처리기술을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조선 세종에서 현종 때에 이르는 동안 아연·황동·청동의 합금기술·제련기술·열처리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으나, 이규경이 저술한 황동 제련기술 이외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역대 조정이 중국의 조공압력에 시달려 비생산국을 주장하고 채광 및 제련을 금하여 쇠퇴된 것으로 생각된다.

근대에 와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금속아연을 공업적으로 생산하게 된 것은 1943년 평안남도 진남포 제련소내에 습식 아연제련공장이 건설되면서이고, 광석은 함경남도 단천에 있는 검덕광산(檢德鑛山)에서 조달하고 45% 내외의 아연정광을 사용하였다.

1960년대에 동신금속주식회사에서 습식 아연제련공장을 시흥에 건설하였으나 10년도 못 되어 폐업하였으며, 1970년에 영풍광업주식회사의 연화광산(蓮花鑛山)을 주로하여 아연생산에 돌입하였다.

1974년 고려아연주식회사를 창립하였으며, 1976년 온산비철단지 내에 습식 아연공장을 착공하여 1987년에는 연산 15만 톤의 국제적 규모로 성장하였다.

참고문헌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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